<웨이브> 어느 CEO의 충고

요즘 전세계는 인터넷에 중독된 듯하다. 모두들 인터넷의 위력에 압도당한 느낌이다. 이런 가운데 대표적인 컴퓨터업체인 미국 휴렛패커드(HP)의 루위 프랫 최고경영자(CEO)가 인터넷의 부작용에 관해 조용한 우려를 표명해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랫 CEO는 최근의 한 전시회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인터넷이 인간의 삶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호소했다.

그는 『컴퓨터 기술 발달로 인간사회는 점점 더 개인의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됐다』고 말문을 연 다음 『인터넷은 자칫 TV의 역사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다시 말해 인터넷 문화가 확산될수록 우리의 오감은 더욱 무뎌지는 한편 매일 우리가 우리 가족이나 친구들과 나누는 따뜻하고 지성적인 대화마저도 일련의 「사운드 비트」, 즉 무의미한 0과 1로 디지털화한 음성 데이터로 전락되고 말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인터넷의 보급이 늘어나고 또 전자상거래에 힘입어 점점 상업성이 커질수록 이에 비례해 우리 삶의 수준은 더욱 악화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컴퓨터 관련업계의 최고경영자가 인터넷의 미래에 흠집을 내는 발언을 공식적으로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인터넷 상거래를 미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선정하고 클린턴 정부와 업계가 하나로 똘똘 뭉쳐 집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같은 지적은 업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HP 스스로도 전세계적으로 이 분야의 사업을 크게 확대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번 프랫 CEO의 발언은 일종의 양심선언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인터넷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가까이는 정크메일로 인한 피해를 비롯해 사생활 침입이나 음란물 유포, 불법무기 거래, 범죄단체의 연락처로 악용되는 사례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발생했던 사이비 교도의 집단 자살극에도 인터넷이 깊숙이 관여했던 점 또한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다. 이번 프랫 CEO의 경고는 이같은 부작용에 더해 인간 정서생활 측면에서 문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인터넷 상거래를 등에 업고 전세계는 인터넷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이제는 차분히 그 장단점을 가려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더 불거지기 전에 뒤를 돌아보며 추스리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