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로 치솟된 환율이 3개월여만에 처음으로 최근 달러당 1천3백원대로 진입하는 등 당초 예상치보다 빠르게 떨어지면서 국내 부품업체들이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본격적인 IMF체제 도입에 따른 고환율시대를 계기로 계속 추락하던 대외 가격경쟁력이 되살아나 연초부터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준비해왔던 부품업체들로선 예기치 않았던 가파른 환율하락세가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으로 전망되는 탓이다.
부품업계의 이같은 우려는 몇가지 사실에 근거한다. 우선 환율이 지난해 말 달러당 1천9백원대를 정점으로 올 초까지도 1천7백원대를 유지함에 따라 상당수 부품업체들이 기존 해외 거래처들로부터 강력한 가격인하 압력을 받아 이미 상당폭의 가격조정이 이루어졌거난 협상을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업체별로 차이는 있으나 현재 통상 10∼20% 가격조정이 이루어졌으며 심한 경우 30% 이상의 가격인하 조치를 내린 경우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환율이 달러당 1천7백원대라면 지난해보다 두배 가까이 오른 것이고 1천3백원대만 유지해도 이 정도의 가격조정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은 있다.
문제는 현재 공급가격 기준으로 환율이 예상보다 빨리 1천1백원대로 진입했을 때다. 물론 환율등락의 변수들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지만 최근 외환 수급상황과 1천3백원대 조기진입을 감안한다면 1천원∼1천1백원대의 진입 시점이 단 수개월만 빨라져도 부품업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적지않을 전망이다.
소비재 성향인 세트와 달리 부품이나 원자재는 일단 공급가격이 결정되면 주변 환경이 변한다 해도 쉽게 인상되기가 어렵다는 점도 현재 부품업체 관계자들이 크게 우려하는 부분이다. 즉 환율급등을 이유로 공급가격을 내려준 이후 환율이 제 자리를 찾는다 해도 공급가격을 올리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특히 내수와 달리 수출의 경우는 가격 재조정까지의 시점이 길고 일단 한번 책정된 가격은 상당기간 지속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핵심소재를 비롯해 주요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부품업체들로선 환율이 급락하게되면 높은 가격에 원자재를 도입, 싼 가격에 판매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정작 국내 부품업체들이 최근 환율하락세를 걱정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고환율에 의존하는 국산 부품의 국제경쟁력이 환율하락으로 일거에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근거한다. C사의 관계자는 『지난 95년 슈퍼엔고시기에 호황을 누리던 국내 전자업체들이 엔화가 졸지에 약세로 돌아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전례가 있다』며 『가격 경쟁력에 승부하는 부품업체들의 피할 수 없는 한계점』이라고 지적했다.
최대 경쟁국인 중국위안화와 대만NT달러 가치의 하락조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 환율급등으로 중국이나 대만산 부품에 가격경쟁력을 회복, 선전이 기대됐던 국내 부품업체들로선 만약 입장이 반전될 경우 해외는 물론 국내 로컬시장에서의 심각한 경쟁력악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환율하락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크고 적정선까지 떨어지는 것은 예상해온 사실이지만 현재의 가파른 하락세가 이어지는 것은 부품업체들에 또다른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