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를 비롯한 방송계의 숙원이었던 새 방송법의 제정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 같다.
작년 대선 이후 각 단체와 학계는 새 방송법의 기본적인 틀을 조율하기 위한 각종 공청회나 토론회, 심포지엄 등의 행사를 경쟁적으로 펼쳐왔다. 특히 이달 하순 들어서는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케이블TV프로그램공급사업자(PP), 종합유선방송국(SO), 케이블TV협회 등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이 새 방송법에 대한 건의문이나 입장표명을 잇달아 제시, 열띤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국민회의의 새 방송법 초안에 방송계의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국민회의의 시안은 아직 당의 정식안으로 확정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자민련 측과의 조정을 거쳐 야당과 협의를 이뤄내야 하는 등 아직까지 적지않은 과정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관계기관이나 업계가 국민회의의 시안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선은 자민련이 별도의 안을 준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 따라 이 안의 골격이 여당 단일안으로 굳어질 확률이 높다는 점일 것이다.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새 방송법이 지난 3년여 동안 국회상정, 처리유보를 반복해 온데다 새 방송법의 내용 자체가 향후 방송 및 통신산업의 구조변혁을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자 방송의 산업화 및 규모의 경제를 이끌 수 있는 근간을 제공할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케이블TV산업은 새 방송법으로 인한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TV 관계자들이 국민회의 측 새 방송법 시안의 항목항목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새 방송법이 미칠 영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국민회의 측의 새 방송법 시안 내용은 전체적으로는 과거 정부, 여당안이나 국민회의의 야당시절 안보다 진보적이고 산업 측면을 고려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IMF와 머독의 대한 투자문제를 비롯한 급격한 환경변화가 적지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국민회의 측 새 방송법 시안 내용 가운데는 사안에 따라 공평하지 못하거나 케이블TV 사업자 상호간의 이해가 엇갈리는 데 따른 고질적인 문제들, 그리고 케이블TV 출범 당시부터 큰 논란이 돼왔던 케이블TV와 중계유선방송 사업자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등 미진해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복수SO나 복수PP는 물론 사업자 상호겸영의 길을 터놓은 것은 경영난에 허덕이는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숨통을 틔어주는 조치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케이블TV 전송망사업자(NO)에 대한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는 33%로 높여주면서 PP에 대한 투자한도는 여전히 15%로 제한하고 SO에 대한 투자도 계속 금지키로 한 것은 케이블 관련 사업자들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PP의 경우 이미 상당수의 사업자가 부도위기에 처해 있음은 물론, 누군가가 인수해주지 않으면 회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처한 경우도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PP의 등록제 전환이나 채널티어링을 비롯한 SO의 채널선택권 불허 등 사업자간 이해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분야에 대해서는 피해를 느낀 측의 불만도 적지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처럼 상호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과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향후 공청회나 정당간의 논의과정 등을 통해 노출되고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만큼은 새 방송법을 차질없이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새 방송법안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3년여 발목이 묶이면서 케이블TV 사업자들이 겪어야 했던 불이익과 어려움이 많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한파까지 불어닥쳐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국민회의 측이 최근 새 방송법 시안을 서둘러 마련한 것도 이런 점들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본다. 국민회의 측은 그동안 논란을 빚어오던 새 방송법안과 주요 관계법의 제, 개정안을 적극 검토, 이번주중 자민련과 정책협의를 거쳐 여권의 최종안을 확정한 다음 4월 임시국회에서 이를 처리할 계획이며 야당도 임시국회에서 이들 법안을 처리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만은 새 방송법 처리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방송산업 이외의 문제로 새 방송법 처리까지 차질을 빚거나 변질될 경우 우리나라 방송산업은 몇 년을 뒷걸음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