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우리에게도 실업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돼버렸다. 올해만 무려 1백50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될 정도이다. 전시상황을 빼고는 유례없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7조원이 넘는 실업기금 마련을 추진하는 등 본격적인 대책마련에 들어가 늦어도 올 하반기부터는 실업자들의 실업수당 및 관리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점에서 뉴욕 공무원실업연금관리국(DWC)의 정보화사업 실패사례는 실업문제 를 코앞에 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DWC는 지난 91년 공무원실업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한다는 취지 아래 정보화 추진 태크포스트(SMT)를 결성해 사업추진에 본격 들어갔다. 이 정보화사업은 매년 7백만장 이상의 문서를 수작업으로 처리해오던 업무를 전산화하는 것은 물론 연금관리국의 업무절차를 재구성해 새로운 행정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기본목표였다.
이를 위해 기존 행정업무를 분석하고 앞으로 연금관리국을 이용할 고객인 공무원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실시하는 등 기초자료를 수집해 시스템 선정기준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앤더슨컨설팅, IBM, 유니시스사 등이 각각 5천만달러, 8천5백만달러, 9천만달러를 제시하며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SMT는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3개의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회사방문, 시스템설명회, 가상실험 등 다양한 심사 과정을 거쳤다.
심사 결과 주 정부는 가격은 비싸지만 유니시스사가 제시한 시스템이 가장 적합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93년 8월에 유니시스를 이번 프로젝트의 공식공급업체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공식발표 직후 의회를 중심으로 반대의견이 거세졌고 특히 공화당 중심의 상원은 이 문제를 언론을 통하여 공론화했다. 여기에는 연말에 실시될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현주지사의 연임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다.
언론을 통한 여러차례의 논란 끝에 DWC는 93년 말에 유니시스와의 계약을 취소했고 결국 정보화추진계획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그후 3년이 지난 96년 연금관리국은 동일한 절차를 거쳐 이 프로젝트를 또 다시 추진하려 했으나 93년과 같은 심사결과가 나오자 현재까지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 사례는 언론을 통한 문제제기 및 여론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듯 정보화사업은 단순히 IT의 활용뿐 아니라 정치적 요소가 함께 작용하는 과정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프로젝트 추진기간이 정치인들의 선거기간과 일치할 경우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정책형성, 결정, 집행 및 평가과정에서 언론이 정보전달, 의견수렴 및 홍보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정책성과 향상에 순기능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연금관리국의 정책사례에서는 언론이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친 IBM 성향의 공화당의원에 의해 본 사업이 언론에 노출됐을 때 연금관리국은 정책결정과정의 공정성이라는 행정관리적 합리성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정치성을 간과한 우를 범했다는 평가다.
결국 정보화가 계속 지연됨으로써 종전처럼 엄청난 양의 문서처리를 위한 관리비용 부담이 계속 증가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하드웨어의 출현으로 90년초에 수립한 정보화 계획 자체가 현실성을 잃고 표류하는 결과를 낳았다.
<김경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