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69)

지 과장이 망을 이었다

『실장님, 해커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흔적을 남겨둔다고 합니다. 자신의 능력만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그 흔적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 맨홀과 자동절체시스템에 장애를 일으켜 통신망을 마비시키고,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금은방을 털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자신이 행한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르고 작은 일에 신경을 썼을 경우 이번과 같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알았네. 먼저 알아보아야 할 것은 그 시나리오의 내용이야.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보는 일이야.』

『언제 방문하시게요?』

『지금 바로 출발하겠어. 먼저 맨홀 속 통신케이블 복구작업에 대한 진행상황을 파악하고 난 후, 경찰서에 들러 그 시나리오를 확인해 보겠네.』

『참, 실장님. 어제 창연오피스텔에서 죽었다는 여자 사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 진행된 것은 없는 것 같아. 아까 조 반장과 통화할 때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어.』

『바로 위층 같은 호실에 위성 안테나가 연결되어 있었다면서요?』

『위성뿐만이 아니야. 광케이블 하나를 전용선으로 통째로 쓰고 있어.』

『다녀오십시오. 일반가입자 절체가 끝나고 광케이블 복구작업이 진행되면 이곳 통제실에서도 절체된 회선을 원위치 시키겠습니다.』

『알았네. 그리고 연구소 김창규 박사한테 연락오면 비상무전기로 직접 연락하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이곳에서도 특별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바람.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차의 열린 유리창으로 상쾌한 아침 바람이 밀려들고 있었다. 동쪽 능선에 걸린 태양이 뾰족하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김지호 실장은 장엄하게 시작되는 새로운 하루를 바라보며 마포 쪽으로 접어들었다. 이미 제법 많은 차량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종종 차가 밀렸다.

잠깐 잠깐씩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김지호 실장은 통제실에서 떠올렸던 생각을 이어나갔다.

일본은 「대한시설강령」과 「대한시설세목」을 통해 조선을 침탈하기 위한 방침과, 그것을 위해서는 통신권의 침탈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본격적인 통신권 침탈을 진행했다. 그러나 당시 전기통신을 담당하고 있던 조선인 직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