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3사가 지난달 31일 증권감독원에 제출한 97년 사업보고서는 국내 가전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우선 그동안 가전산업을 이끌어왔던 AV기기의 퇴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데 비해 백색가전제품의 경우 내수는 물론 수출에서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가전업계의 효자상품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또 에어컨이 내수시장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최대 가전제품으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으며 수출을 포함하더라도 TV에 이은 제2의 가전제품으로 떠올랐다.
컬러TV의 경우 삼성전자가 전년대비 31.7%가 감소한 9천3백3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그쳤으며 LG전자는 1.4% 소폭 늘어난 1조3천1백22억원, 대우전자는 수출호조에 힘입어 내수에서의 부진을 만회했지만 전체 평균증가율 23.1%에 크게 못미치는 17.2%가 늘어난 1조 2천7백77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VCR도 LG전자가 전년대비 15.8% 감소한 4천4백82억원, 삼성전자는 무려 33.9%가 줄어든 2천9백6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냉장의 경우 LG전자가 96년에 비해 35.3%, 대우전자는 21.4%가 각각 늘어난 6천5백13억원, 4천8백48억원의 실적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에어컨은 LG전자와 삼성전자 모두 전년대비 25.9%, 14.6%씩 각각 증가하면서 가전부문에서 TV에 이어 제2의 매출을 기록하는 대형상품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컬러 TV, VCR, 냉장고와 함께 5대 가전제품의 한 축을 지탱해왔던 세탁기와 전자레인지의 경우 큰 폭으로 매출이 감소하면서 5대 가전제품이란 명성마저 퇴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의 5%를 차지하는 주요 제품의 매출현황을 기재하도록 돼있는 증감원제출 보고서에 올해 처음 세탁기가 제외됐다. 전자레인지 또한 LG전자의 주요 품목에서는 제외됐으며 삼성전자가 8.4% 줄어든 3천1백18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보고됐다.
이에 비해 대우전자만이 내수판매 및 수출의 호조로 전년대비 22.0%가 증가한 3천3백47억원의 매출을 기록, 아직까지 대우전자의 주력제품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 중의 하나는 내수시장에서 업계판도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LG전자가 가전 전 부문에 걸쳐 강세를 보인 반면 삼성전자의 퇴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대우전자는 전반적으로 매출이 크게 늘면서 가전전문업체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같은 현상은 LG전자와 대우전자가 가전부문을 주력사업으로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비해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및 정보통신의 매출이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가전부문에 대해 투자가 떨어지고 있는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게 관련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실제 LG전자는 이번에 증감원에 제출한 보고서 중 겹쳐 있는 컬러TV, 냉장고, 에어컨, VCR 등 4대 폼목에서 모두 삼성전자를 따돌림으로서 국내 최대 가전업체로 복귀했다. 또 대우전자는 지난해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TV를 제외한 VCR,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4개 품목에서 전년대비 최저 2.8%에서 최대 40.2%까지의 신장세를 나타내 에어컨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에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한 삼성전자와 좋은 대조를 보였다.
따라서 지난해와 같은 양상이 올해에도 계속 이어질 경우 국내 가전시장에서의 업계간 경쟁은 지금까지의 1위다툼 경쟁에서 앞으로 2위다툼 경쟁으로 바뀌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양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