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달 전까지만 해도 서점가에는 제목에 「밀레니엄」이라는 단어가 붙은 책들이 많이 깔려있었다. 세기말적 불안을 반영한 이런 류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현 시대 전세계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미 1백년 전 19세기 말에도 세기말적 불안이 그 시대를 휩쓸었다고 여러 보고서들이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되는 2001년 1월 1일까지 1천일도 채 남지 않은 요즘 국내 서점가에 깔린 책 제목에선 「IMF」가 「밀레니엄」을 몰아내고 있어 「IMF」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밀레니엄 증후군으로 자리잡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IMF관리를 받는 현 상황이 국가적으로나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나 엄청난 불안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21세기는 날짜를 카운트다운하며 기다릴 여지라도 있지만 IMF관리에서 벗어나는 날은 카운트다운하며 기다릴 수도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개개인들의 머리를 더 심하게 짓누르는 요인일 것이다. 전세계적 밀레니엄 증후가 막연한 불안이라면 우리에게 닥친 IMF관리체제는 더욱 구체적인 것이어서 더 강하게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IMF관리체제란 구체적 대상을 둔 불안은 그만큼 해소의 가능성이 큰, 다시 말해 희망의 끈이 뚜렷이 보이는 불안이다. 불안이 단순한 불안에 그칠 때 사회적 병리현상은 심화되지만 그 불안이 새로운 도전으로 전화될 때 실현 가능한 희망이 우리를 기다린다. 도전의욕은 「나」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을 때 생겨날 것이다. 이제 불안을 벗고 도전하기 위해 「나」의 현재적 조건을 가감없이 평가해 보자.
전문가들은 실업상태를 벗어나려면 눈높이를 낮추라고 충고한다. 창업을 하고자 하는 이든, 취업을 원하는 이든, 또는 불황의 늪에서 기업을 회생시키고자 하는 이든, 나아가 한 사람의 소비자까지도 모두가 눈높이를 낮추라는 이 충고를 귀담아 듣자. 아직도 3D업종에는 구인난이 계속된다는데 젊은 실업자들이 길거리를 배회한다면 우리가 IMF관리를 벗어날 날은 아직 멀었다. 불황극복을 위해 생산적으로 투자돼야 할 국고가 자발적 실업자들에게 낭비된다면 우리는 영영 희망없는 국민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내수진작책을 요구하면서 실업자를 양산하는 기업의 논리적 도착증세도 희망의 싹을 자르는 비수로 작용할 위험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