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昌俊 (주) 미네트 사장
요즘 중소 제조업체 사장들을 만나보면 여기저기서 『무료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줄 테니 자료를 달라』는 요청에 귀찮기 그지없다고 한다. 따져보니 중소기업청,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각 지방자치단체 등이 있고 다른 사업목적을 위해 간이 홈페이지는 무료로 만들어 주는 민간업체까지 있을 터이니 그럴만도 하다. 어느 업체 사장은 중소기업청과 KTNET에 홈페이지가 2개나 있는데 우리한테도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한다. 참으로 웃지 못할 현실이다.
공공기관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서로 중복되어 있는 영역들이 많고 판은 크게 벌여 놓았는데 유지, 관리가 미흡하고 이용자의 참여도 부진한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자리매김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향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분명 일개 단체나 개인이 하기에는 벅찬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콘셉트이다. 인터넷이란 가상공간 안에서 중소기업끼리, 혹은 。。도, 。。시의 기업끼리, 혹은 수출입을 하는 기업끼리 모아보자는 것은 다분히 우리식의 발상이며 국제적 감각에는 맞지 않는다. 외국 사람들에게는 그 집단의 성격조차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란 범주는 정부의 제도적, 정책적 지원과 보호의 대상으로서 유의미한 범주이며 특정지역 소재 기업이란 범주는 행정적 범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한 오늘날처럼 국경이 없는 시대에 수출입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사이버 공간에서 이런 잘못된 범주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고 양질의 정보가 축적되기도 어려우며 전문성이 강화되기란 더 더욱 어렵다.
해답은 자명하다. 정보화의 중핵은 「산업 전문 정보 서비스」를 얼마나 알차게 꾸리느냐다. 전자산업, 기계산업, 화학산업, 섬유산업 등의 산업 전문 정보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여 산업내의 기술, 시장동향 정보가 제공되고 해외의 산업정보가 걸러져 공유될 필요가 있다. 국내 업계의 기술정보, 노하우, 노웨어가 공유되며 국내 산업체들의 상품이 해외로 홍보되어야 한다. 나아가 동종 업계의 사람들이 모여 가상의 공동체를 꾸리고 정보를 축적해 갈 때 참된 「축적」이 이루어지고 전문성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민간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뜻 이런 작업이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나 공공기관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공적인 성격의 사업일지라도 냉엄한 시장경제 안의 생존경쟁을 통해 단련된 전문가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정부 및 공공기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인프라 스트럭처를 꾸준히 확장해 가는 것이다. 공공단체에서는 전용회선을 확보하고 누구나 근거리 내에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둘째, 공공기관이 잘 할 수 있는 전문영역을 설정하여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때 정보의 영역은 좁게 설정할수록 좋을 것이다. 전문성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민간 기업들의 사업을 조정하고 전문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행정 지원을 하는 일이다.
그동안 정보화시대의 격류 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면 이제는 멈추어 서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해 볼 때이다. 행정은 행정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그리고 민간 상호간에도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토대 아래 해당조직 고유의 방향성을 회복하고 자기들만의 특정한 정보를 지향해야 한다. 국제화란 서로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상대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 자신의 전문성을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출발점을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젠 개인도, 조직도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시대이다. 산업, 특히 제조업 각 영역의 정보를 전문적으로 담보할 산업 전문 정보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여 IMF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경쟁력을 재충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