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외환위기로 국산 가전제품 위축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화폐가치가 불안정해지면서 국내 가전업계에 새로운 위기감이 몰려오고 있다.

엔화와 위안화의 약세는 그동안 제품경쟁력보다는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해외시장을 공략해온 국내 가전업계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국산 가전제품의 대형 OEM거래선인 일본과 엄청난 잠재수요확보를 위해 공들이고 있는 중국시장 자체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도 국내 가전업계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동안 국산 가전업체들은 고급제품은 일본, 저가제품은 중국산에 끼인 말 그대로 샌드위치적인 입장에서 중저가 제품을 앞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해왔던게 사실이다. 일본에 비해 품질은 뒤떨어지지만 가격은 월등히 싸며 중국산에 비해서는 품질은 월등히 높지만 가격차는 얼마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가격정책으로 지탱해온 셈이다.

그러나 양국의 화폐가치 하락은 이같은 기존의 등식을 송두리째 허물어뜨리고 국산제품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에서 모두 뒤져 해외신시장의 개척은 물론 기존 시장까지도 고스란히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가전업체들도 이제는 도피성 수출전략에서 탈피해 품질과 가격에서 일본 및 중국산과 당당히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우선 엔화의 경우 업계에서는 당장 달러에 대한 엔화의 약세가 당장은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보고 있지 않지만 23개월 이후에는 엔저에 따른 영향이 가시화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시장에서 국산제품과 경쟁하고 있는 TV나 VCR은 엔저현상이 심화될 경우 가격경쟁력을 상실해 이에따른 영향은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국내 업체들의 대형 OEM거래선이었던 일본업체들도 OEM물량을 축소하고 자체 생산으로 대체하거나 저가제품은 거래선을 중국 등으로 돌릴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가전업계에서는 엔화의 하락현상이 다소 진정되고 있다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엔저가 계속되고 원화가 절하되지 않는 기현상이 이어질 경우 수출전선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엔화가치변동에 따라 현지 딜러들에게 가격정책을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의 갑작스런 가치하락도 국내 가전업계의 수출전략에 새로운 암초로 부상하고 있다. 일단 중국시장의 위축으로 상담감소 및 구매계약 취소, 가격인하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중국으로의 수출물량이 크게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중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이나 유럽기업들의 중국산 제품들이 낮은 가격으로 해외시장에 대량유출될 경우 브랜드나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는 국산 가전제품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내 가전업계에서도 위안화의 가치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불가피한 중국의 수입대체산업을 집중발굴하고 현지생산을 강화하면서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결국 일본과 중국 양국의 화폐가치하락은 지금까지 도피성 수출전략을 전개해온 국내 가전업체들에게 정정당당하게 일본 및 중국산 제품과 맞설 수 있도록 제품경쟁력 및 가격경쟁력을 높여야할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이것이 비로 국산 가전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기반을 구축하는 전제조검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양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