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南熙 전자통신연구원 이동통신기술연구단 책임연구원
국제통화기금(IMF)의 고통이 예상보다 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매일 수백개의 중소기업이 부도로 문을 닫고 1만명 넘는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가정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으며 많은 가장들이 집을 나서 거리를 헤매거나 노숙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장사도 되는 게 없고 국민들의 걱정과 한숨은 날로 커가고 있다. 심지어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불도저가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작업량이 줄어 헐값에 중고가로 외국에 팔려 나간다는 소식까지 접한다.
이러다가는 IMF시대가 끝난 뒤 모든 경제활동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시점에는 취약해질대로 취약해진 그리고 탈진해버린 국내경제 기반으로 인하여 제기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학은 국가경제력을 떠받치는 기본 원동력이다. 그동안 나라가 어려울 때, 수출이 안되고 외국에 대하여 국가경쟁력이 떨어질 때마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미흡하였음이 누차 지적되어 왔고 더욱 강력한 과학기술정책과 지원이 요구되어 왔다.
80년대 국내 대기업들이 외형적인 많은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 투자에 등한시하여 상품의 질에서나 경쟁력에서 외국에 뒤져 수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아직도 수출상품의 품목이 다변화하지 못하고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몇몇 상품에 의존해야 하며 고부가가치 상품은 미국, 일본 등 기술 선진국에, 노동집약적 상품은 중국이나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추격당함으로써 진퇴양란의 처지에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한번 중단된 과학기술은 다시 활착시키는 데는 많은 기간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은 투자한 즉시 바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사과나무가 심은 후 몇 년에 걸쳐 비료와 거름을 주고 정성을 들여 가꾸어야 열매를 맺듯이 과학기술도 끊임없이 전문인력 양성과 시설장비에 투자를 하여야 과실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희망은 과학에 있다. 우리는 현재가 아무리 어렵고 큰 고통을 요구할지라도 내일의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아니 이러한 기회일수록 더욱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내일을 위하여 좋은 계획을 가져야 한다. IMF시대가 끝나고 모두가 재도약하려 할 때 우리를 일으킬 수 있는 숨겨진 저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바로 과학기술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때 다른 분야에서 더욱 긴축하고 허리띠를 졸라맨다 하여도 과학기술 분야는 가능한 한 투자를 줄여서는 안된다. 이는 과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가지는 독단도 아니고 결코 특권의식도 아니며 다른 국민들의 고통을 몰라서도 아니다.
따라서 정부에 대하여 한가지 제안할 것이 있다. 연구소를 절대 IMF시대의 일률적인 잣대로 제지 말라는 것이다. 몇 퍼센트의 인원을 일괄적으로 줄이라는 정부 방침은 현명하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도, 민간기업도 모두 구조조정을 하고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인원축소에 나서는데 국가 출연연구소라고 성역으로 남겨 두라는 말은 아니다. 인원을 무조건 자르지는 말라는 것이다.
훌륭한 실적을 낳은 연구소, 장래에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연구소를 먼 안목에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이만큼이라도 연구소들을 육성하기 위해 투자해 왔던 돈이 얼마였는가를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육성된 전문인력들이 사회에 나가 비전문 분야에서 종사하게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국가적 손실을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결코 우리나라에서 투자해왔던 과학기술 개발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국민 1인당 면에서나 총액 면에서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야별 연구원 수에서도 선진국에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연구소들의 생산성과 연구결과의 효용성에 있다. 이번 위기를 그동안 연구소들에 만연되었던 생산성 저하, 연구질 향상에의 실패, 민간 부문 연구개발의 국가 출연 등 비합리성을 떨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꼭 필요하다면 연구인력을 축소하는 것도 고려할 수는 있다. 연구분위기를 저하시키고 연구결과를 내지 못하는 연구직 종사자나 지나치게 많은 행정지원 인력은 감축되어야 한다. 민간 부문에서 맡아야 경쟁력이 생기고 효율성이 올라가는 연구들은 과감히 민간으로 이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조정들은 외부적 모양의 부서 통폐합이나 일률적 인원감축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산성의 향상, 연구질의 높임에 목표를 두고 부적합한 내부 구조의 변경, 연구원들의 전문성에 기준한 적정 재배치, 연구 및 경영 목표의 재검토, 연구분위기의 혁신과 냉혹한 평가제도 도입 등을 통해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두어야 한다.
기존 인력의 임금을 하향 조정해서라도 결코 전체 연구력이 약화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가능한 한 적은 돈으로 내핍하며 연구에 몰두하여 좋은 연구 결과를 냄으로써 국민의 IMF고통에 동참하고 이 시기를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