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7);인공동면

196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 퇴직한 심리학 교수였던 베드포드 박사는 폐암 선고를 받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여서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었지만 박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수년만 지나면 의학의 발달로 암도 완치가 가능할지 모르는데, 지금 이렇게 죽어야하다니∥」 그무렵 그의 아들인 노먼은 우연히 에칭거 박사의 「불사의 전망」이라는 책을 읽었다. 에칭거 박사는 디트로이트 하이랜드파크 대학의 물리학 교수.

그 책에는 사체의 냉동 보존법이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사체의 온도를 섭씨 10도 정도로 낮추고 혈액순환은 인위적으로 유지하며, 응고 방지제가 함유된 혈장으로 사체의 혈액을 대치한다. 또 시신은 드라이 아이스로 냉동시키며 액체질소로 저온 보존한다∥」

아들 노먼의 얘기를 듣고 베드포드씨는 스스로 사상 초유의 실험대상이 되기로 결심했다. 즉, 그는 20만 달러로 베드포드 생물 냉동학 재단을 설립한 뒤, 1967년 1월 12일에 73세로 생을 마감했다.

베드포드의 시신 냉동작업은 의학계나 경찰의 눈을 피해서 조용히 진행되었다. 당시 액체 질소캡슐이 있는 곳은 애리조나주의 피닉스뿐이어서 냉동된 시신을 그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이 사건은 전통적인 장례식과는 전혀 다른 사후 처리였으므로 당시 사회적 파장은 적지 않았다. 종교계에서는 거센 반대여론이 일었던 반면 지원자도 쇄도했다.

과연 죽은 사람을 냉동보존하면 나중에 소생시킬 가능성이 있을까. 과학자들은 대부분 회의적이다. 일단 죽은 사람이 다시 소생한다는건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베드포드 박사의 경우 심장이 멎자마자 냉각을 시작했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사망」은 여러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뇌사상태인 사람은 심장이 계속 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심장이 멎은 사람도 자극을 주면 다시 뛰기도 한다.

베드포드 재단은 미래에 의학이 발달하면 냉동된 시체도 되살려 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불가능의 영역은 점점 줄어든다는게 그들의 신념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사람도 인공동면을 할 수 있다면 여러가지 이점이 생긴다. 베드포드처럼 미래에 불치병을 치료할 수도 있고, 영화 「데몰리션맨」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흉악범에 대해 사형대신 좀 더 인도적인 형벌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래에 가장 현실적인 인공동면의 이용법은 아마도 우주여행이 될 것이다. 태양계 밖의 먼 우주는 물론이고, 목성이나 토성까지만 가려고 해도 현재의 기술로는 2∼3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동안 승무원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견뎌야하는 심리적인 부담도 있고, 또 식량도 충분하게 비축해야 한다. 게다가 배설물 처리나 오락, 통신 등으로 소비되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인공동면 기술이 개발되면 이 모든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실제로 「2001년:우주의 오디세이」같은 영화에서 동면은 우주여행하는 승무원들에게 거의 필수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현재 인공동면 연구는 기초적인 토대가 마련된 상태이다. 세포들의 냉동보존은 이미 실용화되어 있고 정자나 수정란을 몇 년이나 보존해 두었다가 다시 살리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쌍동이의 수정란중 하나가 냉동 보존되다가 뒤늦게 산모의 자궁에 착상되는 바람에, 몇 살의 나이차가 나는 쌍동이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소식이 외신을 통해 국내에 알려지기도 했다.

인공동면은 21세기에 획기적인 과학사건으로 기록될 1순위 후보중 하나인 것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