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따라. 우승하지 않으면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 무엇을 하든지간에 제일인자가 돼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뇌리에는 경쟁에서 이겨 정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행동의 목표가 각인돼 있다. 그러려니 정상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는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순위를 비교하여 발표하게 되고, 또 이 순위의 변동에 따라 기뻐하거나 슬퍼하게 된다.
올림픽 경기에 나갈 때 한국은 종합 10위권 이내가 목표라고 한다. 기능올림픽에 나갈 때는 종합 1위가 목표다. 그리고 국가경쟁력 비교에서는 G7국가 수준, 즉 7위권이 목표다. 과학기술부가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선도기술 개발사업의 별명이 G7프로젝트라는 것이 이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즉 순위비교에만 집착한다면 그 참뜻이 가려진다는 사실이다. 세 사람만이 출전한 경기에서 3등 하는 것과 수백명이 출전한 경기에서 3등 하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그리고 순위를 질적인 면에서도 검토해야 한다. 비록 세 사람이 출전한 경기라도 세계 정상급 세 사람이라면 그 3등은 의미가 대단하다. 수백명이 출전했더라도 아마추어가 대부분이라면 3등의 의미는 약하다.
이같은 순위비교의 습관은 국가경쟁력 비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소위 IMD 보고서가 매년 밝히는 경쟁력 순위인데 한국은 언제나 기대 이하인 데다 그 순위가 매년 떨어지고 있어 실망하고 있다. 정상을 향한 우리의 노력이 남보다 못하거나 잘못되었음을 뜻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순위비교의 참뜻을 살리기 위해 그 근본 원인을 분석,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밖으로 나타나는 순위에만 일희일비하면 안될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부는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규모가 세계 7위, 과학기술 인력규모는 10위지만 기술협력은 43위, 과학교육은 24위로 처지는 등 과학기술 종합경쟁력에서는 22위에 불과해 싱가포르(8위), 대만(10위)에도 크게 떨어진다며 그 원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효율성을 높이는 조치가 필요함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외부로 나타나는 순위만으로 그것도 양적인 투입순위와 질적인 산출순위만을 그대로 비교하면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연구개발 투자 면에서도 총량과 함께 GDP의 몇%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느냐도 중요하다. 선진국은 대개 2% 내지 3%를 투자하는데 한국도 이 범주에 속하므로 투입 면에서는 한국이 선두그룹인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연구원 1인당 연구비의 비교도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대만과 싱가포르가 한국보다 앞서고 있다.
한편 투자의 구성을 볼 때 한국은 아주 특이하다. 대개의 선진국이 60% 내지 70%를 산업계가 부담하는 데 비해 한국은 기업이 80%(세계 1위)를 담당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정부는 20%밖에 부담하지 않아 과학기술의 장래를 기업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연구개발 인력구성에서도 산업계 비중이 대개 50% 내지 60%인데 미국은 80%선(세계 1위)으로 특이하며 대만은 반대로 20%대다.
어쩌면 종합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실패는 첫째 정부 부담률의 왜소로 인한 과학기술 기반조성(특히 대학의 기초연구) 및 방향제시와 조정능력의 해이, 둘째 산업계 R&D의 비효율성 아니면 산업계 투입량 통계나 연구비 지출 면에서의 거품, 셋째 제대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없을 정도의 국제화, 개방화 미흡 또는 무관심에 있지 않나 한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계의 분발이 우선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정부 몫의 연구비 투자를 늘리면서 효율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IMF 구제금융과 환율상승으로 한국의 투입량은 벌써 절반 수준으로 삭감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또 산업계 부담분이 대폭 축소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정부가 보완하지 않으면 이번 경제위기의 한 근본 원인이 된, 80년대 말 호황기에 과학기술력 향상에 소홀했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 된다.
<朴元勳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