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31회 과학의 날이다. 과천 정부 제2청사의 과학기술부 건물엔 예년에 볼 수 없었던 「과학의 힘, 그것은 우리의 미래다」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새 정부의 강력한 과학기술육성의지 표명이자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과학의 날을 맞은 과학기술인들의 각오는 새롭다. 정부는 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대덕연구단지내 한국과학기술원 대강당에서 김종필 총리서리, 강창희 과학기술부 장관 등 정계 및 학계, 과학기술계 인사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갖고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또 전국 초등학교에서는 우수과학 어린이, 교사에 대한 표창과 함께 과학실습 및 각종 과학경진대회와 과학강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올해로 31회 생일을 맞은 과학기술계는 그 어느때보다 어깨가 무겁다. 특히 현재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주력산업인 반도체를 뒤이을 새로운 비교우위기술개발을 소홀히 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과학기술인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과기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수준은 반도체, 조선 등 일부 전략산업 생산 및 제조기술은 경쟁력이 있으나 원천, 기초기술은 여전히 취약한 실정이다. 기초과학의 수준을 나타내는 세계권위 학술지의 논문발표건수는 지난해 9천1백24편으로 중국(12위), 인도(13위)보다 한참 뒤진 17위에 머물고 있다. 또 선진국대비 기술수준 역시 막대한 연구개발투자에도 불구하고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생산, 품질관리기술의 경우 선진국의 75%, 반도체기술의 경우 65%수준으로 그런대로 근접한 기술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설계, 정밀가공(50%), 전자제품(45%), 생명공학, 금속소재(40%)는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컴퓨터, 자동화, 극한기술 등 첨단기술과 정보전자소재, 정밀화학소재 등 기초소재분야는 30~35%수준으로 선진국을 따라잡기에는 요원한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까다로운 기술을 독자개발하기보다는 해외기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96년을 기준으로 국내 기업들의 기술도입은 23억달러수준인데 비해 기술 수출은 겨우 1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총체적으로 IMF체제를 가져다 줬다고 볼 수 있다.
보다 충격적인 것은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한 국가경쟁력비교 보고서중 과학기술부문의 우리나라 국제경쟁력수준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투자는 96년도 기준 1백22억달러로 세계 7위, 연구인력규모는 15만6천명으로 세계 10위를 차지하는 등 물량인 면에서는 대만이나 싱가폴등 경쟁국에 비해 월등히 앞서고 있으나 전체 과학기술부문의 국가경쟁력에서는 싱가폴(8위),대만(10위)에 비해 22위로 크게 처져 있다. 이는 16개 정부부처가 각기 따로따로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는데도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것임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새정부는 이같은 점을 파악,대통령 직속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해 국가과학기술정책을 범정부차원에서 분석, 평가하고 예산에 반영하는 등 과학기술정책을 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과학기술투자가 10년후에나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IMF체제극복과 21세기 국가생존전략을 위한 새로운페러다임을 도입해야 할 시점이다.
<정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