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일정보통신 사장
최근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경영혁신 추진 지침」을 마련하고 현재 58개로 난립돼 있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통폐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돼 왔던 중앙 정부 부서의 산하단체에 대한 구조조정이 심도깊게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환영하며 특히 정보통신부 산하 연구기관의 통폐합은 경영혁신을 위한 예산절감보다는 기술개발의 일원화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통폐합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정부 산하 연구소는 아직까지 정보통신 첨단기술 분야를 위한 국가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라는 점이다.
정보통신 분야의 기술종속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그 뿌리는 장기적 안목을 갖지 못한 국내 기업의 단견에서 비롯됐다. 장기적인 신기술 연구개발 투자보다는 국내시장 선점을 위해 선진기술의 도입에만 열중해 막대한 로얄티 지불과 극심한 기술 현상이 초래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국책기술연구기관 및 참여인력의 일관성을 보장해 준다.
과학기술 분야의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은 연구 분야가 똑같은 부서들이 많다. 이들 부서는 상호 공동과제 수행보다는 소속 기관별로 개별적인 연구가 대부분이며 그나마 국책연구과제로 선정된 기술개발 기간이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다른 연구기관으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책연구과제를 일관성 있게 이끌어 나갈 연구기관 및 참여인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과 개발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셋째, 국책연구과제 선정시 중복투자를 막을 수 있다.
소속 연구기관의 과제 기간이 끝나고 다음해에 국책 연구 과제에 선정되지 못했을 경우 연구 결과는 사장되고 다음 연구기관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매년 국책 연구과제를 공모하고 이 과제에 선정돼야만 연구개발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근본적인 한계는 편중지원을 막는다는 정보통신부의 애초 의도와는 달리 개발과제의 연속성 결여로 중복투자의 문제를 낳고 있다.
넷째, 중소 정보통신기업의 세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일원화는 기초기술 분야의 개발성과가 기술이전으로 이어져 중소 통신기업의 기반 기술확보와 기술축적의 밑거름이 된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기술개발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벤처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지금 이들을 위한 국가적 배려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 차원의 중소기업 육성 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자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방법은 역시 국책 연구기관의 일원화와 연구개발 성과 중소기업에 이전하는 것 뿐이다.
21세기는 정보통신의 시대다.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집약적 산업 육성과 젊은 벤처기업의 육성은 국가적 과제이며 IMF파도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기술 종속국의 오명을 씻고 정보통신기술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 조정의 노력은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전국민이 나서야 할 당면 과제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 정부의 정부출연연구기관 통폐합 계획은 감량 경영으로 인한 국가경쟁력 확보를 단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