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반도체 통계

金大煜 세미피아컨설팅그룹 대표

현재 우리나라가 메모리산업에 대규모의 투자를 시작한 시기는 83년이다. 이 시기에 삼성전자를 필두로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재벌기업 최고경영자들은 향후 반도체산업의 필연성을 예견해 기업의 힘을 반도체산업에 집중했다. 이를 바탕으로 92년 한국의 삼성전자는 일본과 미국 유수의 선진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제1의 메모리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95년 세계시장 매출순위는 삼성전자 6위, 현대전자 10위, LG반도체 16위 등 한국의 반도체 3사가 모두 20위권 내다.

특히 94, 95년 메모리반도체 호황이 길어지면서 「무어의 법칙(반도체 경기가 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경험적인 학습곡선)」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95년 말부터 시작한 메모리 가격은 무서울 정도로 급격히 하락했다. 그리고 그 여파가 98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불황의 파고가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94년과 95년 호황의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2년간 호황이 지속되면서 사이클의 정점이 너무 높아져 상대적으로 불황도 당연히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원인은 시장 분석 및 전망을 반도체업계 스스로가 너무 왜곡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 상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95년 세계 메모리시장은 미국시장에서 PC 붐이 지속돼 실리콘 사이클의 저점의 시기가 약간 밀렸던 것은 사실이나, 경험적인 학습곡선상으로 볼 때에는 저점으로 진행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한국 및 일본 업체들은 자신들의 메모리 생산량을 축소 발표함으로 세계시장에서 수요초과는 지속될 것이라는 분위기를 조장했다. 당연히 시장가격은 높게 유지됐다. 하지만 수요초과를 유도한 것이 결국 대만의 메모리산업 진출의 빌미를 제공했고, 기존 메모리 업체들도 스스로의 정책에 말려들어 설비를 확충한 것이 3년째 지속되고 있는 공급초과의 가장 큰 원인인 것이다.

이제 우리 반도체업계가 살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하나다. 눈 앞의 가격하락에 연연하지 말고 생산량을 정확히 공개해 한국의 공급능력을 분명하게 알리는 것이다.

일본은 시장상황에 맞게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적당한 비율로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시장상황에 맞춰 생산제품의 조절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메모리 전용 공장이기 때문에 마땅한 메모리를 대체할 제품도 없을 뿐 아니라 공장구조도 그렇지 못하다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외국 업체들 역시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이런 생산구조가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메모리 생산량은 이만큼이다. 일본처럼 생산을 비메모리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는 안되니 너희들이 생산량 조절을 해라」는 식의 단순논리가 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업체의 회계장부를 믿는 외국 업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발표한 반도체 관련 통계 데이터를 믿는 기관도 전혀 없다.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스스로가 정확한 자료를 발표해야 한다. 이제 최고 영자의 단순한 느낌만으로 기업이 경영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앞으로는 정확한 자료의 분석을 통한 사업선택과 전략수립만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금 후에 알게 되는 거짓말은 더 이상 통할 리가 없다. 솔직해지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세미피아컨설팅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