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보화」란 개념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21세기 국가 발전의 초석이 정보화라고까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러한 정보화에 대한 상징성은 미국과 같은 정보선진국에 해당되는 개념이 아닌가 싶다.
우리와 같은 정보후진국은 아무래도 정보화로 인한 생산성보다는 소비성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정보화가 진전되기 위한 필수요건 가운데 하나는 정보소비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경제활동과 마찬가지로 정보에서도 생산과 소비가 균형있게 순환될 때 비로소 정보화의 건전한 발전이 기약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보화의 생산력에 비해 소비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이미 보편화되다시피 한 핸드폰이나 호출기의 경우 그 기술이 어떻게 생산되는지조차 모르고 소비가 이루어진다.
97년말 현재 국내 휴대폰업체들은 미국 퀄컴사에 1천6백억원이 넘는 거액을 로열티로 지불했다. 다시말하면 PCS 같은 휴대폰의 부품 국산화율이 30%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뿐인가. 이미 일상화된 홈비디오의 경우 일반 국민이 외화 비디오 하나를 빌려 볼 때마다 그 영화를 제작한 외국 영화사에 꼬박꼬박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다소 지나간 통계치인데 지난 91년부터 95년까지 5년 동안 음반, 비디오, 영화, 만화, 출판 분야에서 국내에 상주하고 있는 외국 직배회사들이 본사에 송금한 로열티가 3천5백억원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종목이 비디오분야라고 한다.
전체 로열티 액수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해외 비디오 소비가 해마다 수백%씩 증가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한 대목이다.
비디오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것은 영화다. 95년 총매출액이 1천9백30억원이었는데 그 가운데 해외로 보내는 로열티 액수가 1천5백50억원을 차지해 79.6%의 국내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용도로 마구 소비되는 핸드폰을 대학생들도 일반 가정주부도 들고 다니고 있다.
그날 기분에 따라 아무 뜻없이 빌려보는 비디오와 영화 관람, 이 모든 게 정보화의 낭비에 불과하는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이렇게 외제를 즐겨 소비한다는 자체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리 국산품을 멀리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심각한 점이다.
품질면에서, 세세한 정보용품들의 기능면에서 우리 국산은 신뢰감과 흥미를 잃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보화의 핵심인 창의력이 떨어지고 모방성과 불법유통이 생겨나기 일쑤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우리 정보화에는 미래가 없다. 더욱이 앞으로 시장개방이 이루어지면 해외의 유수한 정보기업들이 활개를 치며 몰려들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정보화의 기반기술도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외국 정보상품만을 모방하고 소비하려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정보화상품의 생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보소비를 현명하게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정보화에 따른 생산, 유통, 소비 등 일련의 모든 과정에서 산업계나 정부, 그리고 일반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재인식할 계기가 생기기를 바랄 뿐이다.
<전석호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