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X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 인텔이 새로 발표한 칩세트에 세계 컴퓨터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 달 중순 인텔은 현재의 LX칩세트을 대체하는 새로운 칩세트 「82440BX」를 발표했다.
짧게는 「BX」라 불리는 이 칩세트에 대해 텍사스인스트루먼츠 NEC 후지쓰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메모리 업체가 지지 의사를 표명했고 컴팩 등 컴퓨터 업체들이 이 칩세트을 채택한 PC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어 BX시대가 곧 개막될 것이란 업계 일부의 추측도 전혀 성급하게 들리지 않는다.
인텔은 82440BX가 펜티엄II에 가장 잘맞는 칩세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BX칩세트을 기반으로 할 때에만 펜티엄II가 가장 효율성 높은 성능을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인텔의 주장대로라면 BX기판은 LX기판을 급속히 대체하는 것은 물론 조만간 펜티엄II의 기본 플랫폼으로 정착될 전망이다.
BX칩세트은 실제 LX에 비해 우수한 성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X칩세트은 CPU와 메모리가 데이터를 주고받는 내부 클록속도가 1백MHz에 달한다. 66MHz밖에 되지 않는 LX에 비하면 눈에 띠게 빠른 속도다.
칩세트이 CPU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BX칩세트에서 3백50~4백MHz, 혹은 그 이상의 CPU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는 최고 3백33MHz밖에 지원하지 못하는 LX칩세트의 한계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전 PC에서 CPU와 메모리간 처리속도 차이에서 오는 데이터 흐름의 병목 현상을 거의 제거할 수 있게 됐다.
BX칩세트은 또 가속그래픽포트(AGP) 기능을 1백% 활용할 수 없었던 LX기판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와 함께 이 칩세트은 1백MHz 싱크로너스D램(SD램)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등 펜티엄II 프로세서가 갖고 있는 3D 및 비디오 애플리케이션의 성능을 최적화하고 있다. 특히 1백MHz 8ns(나노초)의 SD램이 BX기판에서 지원하는 1백㎒ 이상의 클록속도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SD램을 채택할 경우 BX칩세트을 채택한 PC의 성능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제품은 AGP, SD램, PCI버스에 대한 버퍼 용량을 확장시켜주는 동시에 ATX나 LPX, NLX 보드와 호환성을 유지하고 있는 등 플랫폼의 유연성도 높다. 또한 향상된 전력 관리 기능을 기반으로 저전력 소비를 실현하는 노트북 등 휴대형 플랫폼에 이상적인 칩세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BX칩세트은 차세대 고성능 데스크톱, 워크스테이션, 서버는 물론 노트북 등 휴대형 제품에서도 이상적으로 이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BX칩세트의 출시를 계기로 컴퓨터 시장에도 격변이 예상되고 있다. 핵심부품인 주기판은 물론 그래픽카드, 사운드카드 등 주변기기와 메모리 등의 시장이 급속하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BX칩세트 출시에 대응해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업계는 그래픽카드 업계. 지금은 PCI방식과 AGP방식이 공존하고 있지만 PCI방식이 향후 3~4년 동안은 시장 주력제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BX칩세트의 부상은 PCI방식을 몰아낼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따라 그래픽카드 시장에서는 이제 1백㎒ AGP방식으로 급속히 대체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메모리 부문에서도 일반 D램이나 EDO D램이 고속 SD램으로 급속하게 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BX칩세트을 탑재한 PC가 또한 AGP 그래픽카드가 비디오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 자체 비디오 메모리와 주메모리, 사운드카드의 메모리를 공유해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어 SD램의 사용은 한층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같은 SD램이라 하더라도 10ns보다는 BX기판에 적합한 8ns의 SD램의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운드카드 역시 BX칩세트 출시와 더불어 PCI방식으로의 전환이 급속도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ISA방식을 고집해온 사운드카드 업계는 PCI 방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현재 삼성을 제외한 삼보 대우 등 국내 컴퓨터 업체는 BX시장에 관한 한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BX칩세트을 채택한 제품을 6월부터 시판한다는 계획은 있으나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거품이 빠져가고 있는 국내 소비자들이 BX기판을 탑재한 고가 제품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BX기판에 탑재되는 4백MHz CPU의 경우 가격이 1백만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고 AGP 그래픽카드의 가격도 일반 제품의 2배에 달하고 있어서 불투명한 BX제품 시장 형성에 일조하고 있다.
용산의 조립업체들 역시 메이커들과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내달 초 CPU가격 조정국면 이후에는 사정이 다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늦어도 올해 안에는 BX시장이 형성될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도 있는 것이다.
BX기판을 탑재한 펜티엄II가 획기적인 성능 향상을 보장하는 것이 분명한 만큼 인텔의 시장 지배 전략도 내재돼 있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인텔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냉엄한 시장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보면 어쨌든 BX시대는 도래할 수밖에 없다는 게 국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허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