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정보화의 아이러니

역사에는 늘 아이러니가 따라다닌다. 지금 전세계 컴퓨터업계를 들뜨게 하는 밀레니엄 버그, Y2k 문제만 해도 그렇다. 컴퓨터의 연도인식 문제를 두고 마치 세상에 종말이 다가온 것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이나 후진국들은 남의 일로 여기고 있다.

일찍이 전산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꾸준한 전산투자를 계속한 대기업이나 선진국 등 소위 선진 기관일수록 Y2k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정보 네트워크가 정지되고 그간 축적된 자료나 운영시스템도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돈이 없어서 혹은 상대적으로 전산투자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해 뒤늦게 전산화를 추진한 중소기업이나 후진국들은 Y2k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최근 기종들은 모두 밀레니엄 버그를 원천 봉쇄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앞서나간 자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역사의 일반적 속성이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뒤처진 쪽이 화를 면할 수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보화도 비슷한 경우에 속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국가 정보화를 추진했지만 그 덕택에 세계 최신 기술, 최신 기종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가 성립됐다. 우리의 전화 보급이 그렇고 PC가 그렇다. 세계 여러나라를 둘러봐도 한국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전화기는 분명 첨단 모델이며 인텔이 최신 칩을 발표하자마자 그것을 채용한 PC를 가정에서 사들이고 있는 나라도 한국이다.

더구나 세계 기록을 유난히 밝히는 우리 국민 정서는 이같은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삐삐, 휴대폰, 개인휴대통신(PCS) 등 신규 통신서비스는 무엇이든 세계 최단시간 1백만명 가입자 확보를 외치는가 하면 그것을 위해 1년도 채 못돼 전국에 1천개 이상의 기지국을 건설, 전국망을 구축하는 것도 세계 기록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의 절반이 삐삐를 차고 다니고 대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은 물건 1위는 PCS가 됐다. 시장 보는 가정주부들도 휴대폰 하나쯤은 들고 나가야 기를 펴는 세상이 됐다.

겉으로 보는 세상은 이렇지만 막상 정부가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정보화 지수는 형편없다. 우리나라의 1인당 PC 보유대수는 미국의 46%, 일본의 84%에 불과한 세계 20위다. 가구당 보유대수는 약간 올라간 15위. 1인당 휴대폰 보유비율은 세계 20위, 가구당 전화회선수는 8위다. 전체적인 대한민국의 정보화 순위는 세계 55개국 가운데 22위(IDC 조사자료)다. 정부는 이 때문에 대대적인 정보화 투자를 감행, 오는 2002년에는 가구당 PC보유대수를 세계 9위, 1인당 이동전화보유율 세계 11위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정보화는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가 「대강 문화」와 결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드웨어 보급은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세계 몇 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보화에서 소외받는 계층과 지역을 없애는 일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라면 당연히 정보화의 소외계층을 배려해야 한다. 돈만 퍼붓는 외형성장 위주의 폐해는 이미 다른 경제분야에서 지겹도록 검증받았다. PC와 이동전화 보급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소외계층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어쩌면 그들로 인해 계층간 불신과 적대감이 더욱 증폭되는 또다른 정보화의 아이러니가 탄생할 수도 있다.

<김윤호 상명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