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었던 한국영화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인식의 전환을 보였던 것은 김영삼 정권에 이르러서였다.
「세계화」를 주창했던 김영삼 정권은 과거 어느 정권보다 문화산업 육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97년 9월 당시 문화체육부의 토요문화산업포럼 자료를 보면 『영화산업은 21세기 신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영상산업의 핵심기반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이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자국 영화산업 육성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또 『성공적인 문화상품으로서의 영화탄생 구조는 뛰어난 창의력, 첨단의 기술력, 충분한 자본력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의 투영』이라고 서술돼 있는 등 적어도 당시 영화정책 및 과제에 대한 인식방향만큼은 옳았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당시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날로 줄어들었고 영화인들은 연일 불거져 나오는 스크린쿼터 축소설에 가슴을 졸였으며 공륜 대신 공진협의 가위질을 당해야 하는 등 정책지향과 현실간의 격차는 몹시 컸다.
이러한 와중에 「간섭은 않고 지원만 한다」는 새 정부의 영화정책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새 정부는 먼저 IMF시대의 영화산업 위축이라는 급한 불을 끄고자 지난 4월 영화진흥공사를 통해 10편의 영화를 선정, 총 30억원을 융자했으며 이달중에 이미 조성된 한국은행, 한국산업기술금융 등의 출연자금 20억원을 한국산업기술금융을 통해 몇 편의 영화제작에 투자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오는 6월을 전후로 한국산업기술금융에 약 2백억원 규모의 영화투자전문조합을 구성한다는 의지로 관계법 개정과 투자자금 조성을 병행 추진중이라고 한다. 신속한 재원조달은 물론이고 영상산업을 첨단 기술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의지의 일환으로 6월 입주예정인 영상벤처빌딩 조성사업을 활발히 진행중에 있다. 극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3개 업종의 40여개 업체가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주체가 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식의 이번 제1호 영상벤처빌딩은 강남의 영상업체 밀집지역에 조성되며 입주업체는 임대보증금 면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외에도 문화부는 99년 초에 제2,3호의 영상벤처빌딩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정부는 현행 영화법의 심의조항이 검열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심의제도의 개선 그리고 영화진흥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현재의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와 국립영화기술센터로 분리하는 계획을 가지고 개정법안의 마무리 검토가 한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과 같이 정권교체 후 수 개월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새 정부의 영화정책 관련 시도들은 그 방향과 내용에 있어서 한마디로 획기적인 조치들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새 정부 아래에서 한국영화산업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인가. 결론은 『아직 모른다』이다. 영화산업 역시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구조조정과 개혁을 통한 경쟁력 제고 없이는 21세기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며, 더구나 단 한번도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했던 한국영화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 많다.
이제 정부는 한국영화산업의 건강한 육성과 관련해 다시 한번 총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울 때다. 영화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분적인 건의를 선별, 수렴해 수립한 정책은 한국영화산업의 경쟁력을 배양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영양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산업은 90년대 이후 거의 10년간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영화계 전체가 한국영화의 앞날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며 지속적이고도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때다. 다가오는 21세기를 대비해 성급하지 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李恩 명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