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뮤직비즈니스인터내셔널(MBI)은 97년 한국 음반시장이 5억1천6백60만달러(환율 8백원 기준, 4천억원 규모)로 세계 12위, 아시아 2위에 달했다고 집계했다. 장르별로는 가요가 한국시장의 51%를 차지하고 있고, 다음으로 팝이 34%, 클래식, 재즈, 한국전통음악 등이 나머지 15%를 점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자료대로라면 국내 음반업계가 약 2억5천만달러(한화 약 2천억원)규모의 가요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 진출해 있는 음반직배사 및 국내음반사 관계자들은 『실질적인 음반판매량, 인기도 및 방송 노출빈도, 음성적인 불법복제시장 등을 감안해 분석할 경우 가요의 실질적인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한국 음반시장은 「우물안 장사」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세계 12위에 달하는 시장의 70%를 나누어먹는 것만으로 「포식할 수 있는 밥상」인 것이다.
이에따라 해외시장을 겨냥한 음반발매는 자연스럽게 외면되어 왔다. 물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종종 김건모, 박진영 등 스타급 가수들의 영어가사음반이 발매돼 해외진출을 시도했던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음악적 감성에 맞춰 만들어진 곡에 가사만을 바꾼 탓에 세계인의 입맛을 자극하는 데는 실패했다. 특히 우리 국민들에게 익숙한 3.4 또는 4.4조 운율에 맞춘 우리 가요의 리듬에 영어를 꿰맞출 경우 노래와 가사가 겉도는 느낌을 주는 한계에 봉착하기도 했다.
최근 이같은 한계를 깨는 시도가 있어 주목된다. 중소음반기획사인 2CLIPS뮤직(대표 임기태)이 선보인 「트로트팝(TROTPOP)」이다.
독일의 현지 대중음악인들에게 원소스(한국 전통가요)만을 제공하고 가사 및 편곡을 일임, 그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자니 리의 「뜨거운 안녕」이 「Here I Am」이라는 힙합사운드로, 남진의 「가슴 아프게」가 「Love is a Melody」라는 유로댄스사운드로 다시 태어났다. 멜로디는 한국 전통가요지만 리듬은 국제감각의 빠른 음악으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우리 대중음악의 해외수출을 우리 가수의 해외데뷔」로 인식, 언어장벽과 음악창작력에서 한계에 봉착했던 어려움을 아이디어로 뛰어넘은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반 「트로트팝」의 배급방식 또한 새로운 틀을 개척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메이저음반사로서 전세계에 배급망을 구축하고 있는 BMG가 유럽과 미주지역의 배급을 맡고, 일본의 포니캐년이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대한 배급을 담당하도록 했다. 세계로 영업망을 확대한 경험이 없는 한국 음반업계의 현실을 직시, 해외음반사들에게 좋은 음악을 제공해 그들로 하여금 판매하도록 우회한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음악은 아닐지라도 만국공통의 음악인 클래식을 이용, 외국음반을 주문자상표생산방식(OEM)으로 제작해 역수출하는 업체도 있다. 중소음반기획사인 굿인터내셔널(대표 이근화)은 최근 이탈리아의 복각전문 음반사인 포노 엔터프라이즈, 고음악전문 레이블인 탁투스, 독일의 중저가레이블인 아츠 등과 음반 라이선스 및 수출에 관한 계약을 맺고 매달 10여종의 「모노 폴리」 레이블 클래식음반을 매달 1만여장씩 공급하고 있다.
앞으로 「트로트팝」 「모노 폴리」류의 아이디어 음반들이 많이 나와 한국 음반시장규모 분석에 「수출물량」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