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첨단기술에 대한 도전

尹禮錫 세종정보통신 연구소장

경제위기로 모두 기가 죽어 있는 요즈음 같은 때일수록 차세대 첨단 분야에 대한 진취적인 도전과 올바른 개발방법 모색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박찬호 선수의 승리 소식만큼은 못되지만 그나마 기분좋게 들을 수 있는 본인의 개발 성공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지난 3년간 신문과 TV를 볼 시간도 없이 매달려온 프로젝트는 일명 CTC(Cluster Tool Controller)라고도 불리는 차세대 반도체 장비용 제어 시스템의 개발이었다. 여기서 굳이 「차세대」라는 말을 쓴 것은 CTC시스템이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8인치 구경 웨이퍼는 물론 그 뒤를 이어 21세기 초부터 보편화할 12인치 웨이퍼 처리용 반도체 제조장비에 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현재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가 당시 국책과제로 진행중이던 핵심 반도체 장비 개발사업 중 제어시스템 개발 분야를 맡게 된 지난 95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계획은 당시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캐나다 T사의 제품을 채택하는 것이었으나 이 회사가 미국의 로봇 전문회사에 곧 합병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국내 개발 쪽으로 급선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반도체 공장 원격감시와 소규모 제어시스템의 개발경험만 있는 상태였지만 UNIX 환경에서 단련된 기술력과 객체지향기법이란 신기술의 위력만 믿고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세계 유수의 선발회사들도 CTC시스템, 특히 12인치용 CTC에 관해서는 나름대로의 약점과 고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됐고 내친 김에 이들을 한번 추월해 보자는 욕심도 생겼다.

하지만 처음 하는 일이 욕심 대로 되기는커녕 기술정보와 현장경험의 부족 그리고 계속되는 시행착오 때문에 당초 계획한 14개월의 개발기간이 다 지나도록 처리속도와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미진한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이 계속됐다.

결국 개발사업의 계속 여부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계속 추진하자는 결론은 내려졌지만 향후 개발자금은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선발 회사에 비해 구조적으로 앞선 설계 덕택에 개발 초기부터 오동작률이 현저하게 낮은 점이 돋보였고 따라서 개발에 성공만 하면 이들을 추월할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당초 계획보다 1년을 넘기고 회사 자본금의 10배에 해당하는 개발자금을 부채로 충당하는 고충을 겪어야만 했지만 기대 수준 이상의 성능과 안정성을 실현한 차세대 CTC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세계 그 누구와도 겨룰 수 있는 이러한 신기술 제품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은 엄청난 부채를 끌어안으면서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가졌던 불안감과 회의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해 주었다. 더구나 세계 최고를 지향하며 모든 고난을 이겨낸 노력의 결과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위성통신용 휴대단말기 개발 용역을 새로 수주하는 등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도 생겼다.

결국 10명 내외의 소기업이라 하더라도 창의력과 기술력으로 무장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첨단 부가가치 기술 개발에 과감히 도전한다면 세계적인 히트 상품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며 이것이야 말로 제한된 재원과 인력을 동원해 단시일에 기술적, 경제적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하는 현재 위기상황에 가장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