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제이텔 대표
애플과 IBM은 90년대 초반 새로운 객체지향 운용체계 개발을 위한 공동투자를 포함해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는다고 발표했다. 지금은 애플과 IBM 같은 회사들의 제휴가 별로 새로운 뉴스는 아니지만 경쟁관계에 있던 두 회사의 전략적 제휴는 그 당시 업계의 재편으로 거론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술과 사업영역이 융합된 멀티미디어 시장에서 이러한 전략적 제휴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향후 급속도로 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기본전략으로 추진됐다. 일본 가전업체와 미국의 컴퓨터업체, 부품 개발업체와 시스템 개발업체, 시스템 개발업체와 통신서비스 제공자 간의 제휴는 전세계 정보통신 업계가 멀티미디어 시장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공식과 같았다. 선두경쟁 업체간 합병으로 멀티미디어 시장에서 부동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업체가 탄생했고 전화, 무선통신 및 케이블TV 같은 통신사업자를 중심으로 사업영역 확장을 위한 수십억 달러대의 기업간 인수합병이 빈번했다. 제너럴 매직(General Magic)과 3DO처럼 세계 유수기업이 주주로 참여하는 벤처회사 설립도 가속됐다.
반면 90년 초반까지 그래픽 프로세서와 멀티미디어 기술의 선두주자로 애플, IBM,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세계 유수의 기업과 기술력 경쟁을 벌이며 CDTV(Commodore Total Vision)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그래픽 프로세서 같은 일류 제품을 개발하던 코모도어사는 독자 기술과 자체 제품만을 고집한 결과, 아주 짧은 시간에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코모도어사의 파산은 멀티미디어 사업의 모든 것을 회사나 부서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이 기업의 생존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주었다.
업체간의 전략적 제휴 관계에서 상당 부분은 단순히 전술적인 관계이거나 단기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전략(Strategy)은 실제적인 사업실행 전에 사업방향을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전술(Tactic)은 전략에 의해 결정된 사업실행을 위한 도구다. 기업간의 매수나 합병처럼 많은 투자와 위험을 안고 추진하는 제휴에서도 전략적이지 않을 수가 있으며, 단순한 제품판매 계약도 전술적인 관계일 수 있다. 기술적으로 우수한 업체나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업체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기업의 전략과 동일하게 추진되지 않을 경우는 오히려 실패로 마감되는 경우가 많다. 전략적인 계획이 없는 제휴는 실패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게임기사업에서 닌텐도는 CD롬에 기반한 게임기의 개발을 위해 소니와 제휴했다. 난공불락의 선두주자이던 닌텐도는 별 전략이 없었던 반면, 소니는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위한 명확한 전략을 수립해 놓고 있었다. 그 결과 닌텐도는 게임사업의 노하우만 소니에게 전달하고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이란 열매를 얻어내 이제는 고성능 게임기 시장에서 세가(Sega)와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닌텐도는 후발주자로 전락해 버렸다.
경제난국의 해법으로 벤처산업의 육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의 분석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미국의 창업투자 회사는 매년 제출된 1천개의 사업계획서 중 6개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며 그 중 10%인 0.6개 정도가 성공을 하는 것으로 조사돼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전략적인 제휴는 신생 벤처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에야 비로소 이들 벤처기업 집단이 국내 하이테크 산업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