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문제 연중 기획 5] 금융권 대응 시간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여파로 국내 경제가 피폐화된 가운데 또 다시 컴퓨터 2000년(Y2k)문제가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 금융계가 우리나라를 Y2k문제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대외신인도 평가에도 이를 반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Y2k문제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금융권도 최근들어서야 Y2k문제에 대해 재검토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Y2k 전문가들은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해초까지만 하더라도 Y2k문제를 자체 해결해 2000년이 와도 금융전산망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던 국내 금융권은 최근 이를 재검토하기 위해 솔루션업체 선정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 Y2k문제를 해결했다고 제시할 객관적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부문의 2000년문제 대응추진현황」이란 자료를 통해 국내 34개 은행의 주전산기 가운데 39.8%가 Y2k문제에 대해 무방비상태라며 이를 시급히 교체 또는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국내 금융기관 가운데 Y2k문제에 대한 대응이 미흡해 전체 지급결제시스템의 운용을 저해하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대응조치를 완료할 때까지 지급결제시스템 참여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지난해초 마련한 「금융정보망 안전대책기준」에 따라 금융기관별로 작성토록 돼 있는 업무수행계획을 추가 보완토록 독려해 나갈 방침이어서 금융권이 Y2k문제 해결작업에 다시 나서고 있는 것.

게다가 미국 금융계도 국내 금융권의 Y2k문제 해결결과를 기업신용도 평가에 반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Y2k문제와 관련한 법적 소송이 최근 급증하고 있으며, 미국계 은행들은 미국 법원에 제시할 객관적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 거래하고 있는 한국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Y2k문제의 해결방법과 추진현황 등에 대해 질문서를 보내고 있다.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금융기관과는 당분간 거래를 중단할 태세까지 보이고 있다.

금융권의 한 전산관계자는 『지난 1월경 우리나라와 금융전산망을 연결해 사용하고 있는 한 미국 은행이 Y2k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 은행의 전산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미국에 연결된 뱅킹망을 끊겠다는 의사를 비쳤다』며 『이같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 은행과 미국 은행사이에 금융 전산망이 가동되지 않아 국내 기업들의 수출입 업무가 사실상 마비될 가능성도 크다』며 Y2k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Y2k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는 업체의 한 관계자도 『은행권의 경우 보통 전체 시스템에 대한 컨설팅작업 외에도 테스트작업에 최소 3개월, 재수정작업에 최소 3개월 및 재점검작업에 1~2개월 등 최소한 1년 가랑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적어도 올해 5월까지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수정작업을 끝내고 6월부터 본격적인 테스트작업에 돌입해야 하는데 지금은 Y2k문제 대응에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권의 Y2k문제가 내년초부터 서서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 전산프로그래머들은 보통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연도를 표기하는 「YY=?」가운데 「YY=99」항목을 99년이 되면 어떤 일을 처리하라는 정상적인 로직으로 작동하도록 명령한 것이 아니라 「합계」나 「요약 리스트」업무를 처리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 파일들은 주로 배당금지급프로그램 등 일괄작업을 처리하는 배치파일에 많으며 일부에서는 이 항목을 수정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컨설팅한 결과 완벽하게 처리한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의 정보계도 Y2k문제에 무방비상태다. 그나마 IBM기종을 사용하는 곳은 Y2k솔루션공급업체들이 많아 문제해결이 단지 시간문제이지만 정보계에서 사용하는 유닉스기종은 프로그램언어의 종류가 다양해 Y2k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복잡하고 솔루션업체들도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계용 프로그램을 개발한 개발자들이 명예퇴직한 일부 은행의 경우 Y2k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 소스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Y2k문제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현재 금융권에선 회사 구조조정 및 통폐합 문제가 현안으로 닥친데다 경영자들의 정보화 마인드도 없어 Y2k문제 해결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게다가 현재 Y2k솔루션업체를 선정한 은행 가운데 일부 은행도 Y2k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서라기보다 은행감독원의 감사에서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한 면피용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계의 한 전산실관계자는 『경영진들 가운데 Y2k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데다 당장 회사가 통폐합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Y2k문제는 논외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책마련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