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생물학자 라자로 스팔라자니는 박쥐를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깜깜한 밤중에 날아다니는 나방을 잡아먹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연구했던 것이다.
그는 조명이 전혀 없는 작은 방안에 0.1㎜ 굵기의 철사를 열십자로 둘러치고는 박쥐를 풀어놓았다. 박쥐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도 유유히 철사를 피해 날아다녔다. 그러면서 2m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 날고 있는 나방을 정확히 낚아챘다.
당시 스팔라자니는 여러 방식의 실험을 거친 결과 박쥐의 귀를 막으면 그와 같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까지는 알아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비밀은 박쥐가 발사하는 초음파였다. 이 사실은 독일의 도랄드 구핀이 밝혀낸 것이다.
박쥐는 초음파를 발사한 뒤 그 반향을 듣고 앞에 있는 물체를 인식한다. 이러한 박쥐의 레이더는 무척 고감도여서 1㎝ 정도의 작은 물체도 정확하게 가려낸다. 오늘날에는 레이더나 「소나」라고 부르는 음파탐지기가 박쥐와 같은 원리로 같은 기능을 하지만 그 식별력은 박쥐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박쥐의 놀라운 탐지력이 미치는 거리는 대개 2m 정도인데 반해, 레이더나 소나는 출력이 높은 만큼 탐지영역도 넓어져 박쥐의 수만배까지에 이른다.
인간의 귀는 16㎐정도의 저주파에서 2만㎐ 정도의 고주파까지 탐지할 수 있다. 그런데 박쥐는 2만㎐ 이상 10만㎐까지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박쥐가 사냥을 할 때 주변 환경에서 나는 소리들은 대개 인간의 가청주파수 범위 안에 드는 것들이다. 따라서 박쥐가 고주파를 발사했다가 그 반향을 들을 때도 다른 잡음에 방해받는 일이 거의 없이 집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론은 고주파 잡음을 발생시키는 실험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2만㎐ 이상의 소음을 쏘자 박쥐가 장애물에 부딪혀 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초음파를 발사해 그 반향을 듣는 동물은 사실 박쥐뿐만이 아니다. 돌고래나 일부 조류, 포유류에서도 발견되는 능력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박쥐의 「생체 레이더」 메커니즘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어부들이 먼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을 때 쓰는 어군탐지기도 바로 박쥐 레이더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생물들의 특수 기능을 인간 생활에 응용하는 학문을 「생체모방 과학(바이오미메틱스:Biomimetics)」이라고 부른다. 비행기는 동물의 생체를 모방한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유선형에 속이 빈 가벼운 몸체라든가(새의 몸은 속이 빈 가느다란 뼈들로 이어져 있다), 양력을 발생시키기 쉬운 날개 구조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의 비행기는 공기가 없는 곳에서도 날 수 있는 로켓엔진이 개발되는 등, 어떤 면에서는 새들보다도 더 뛰어난 면도 있지만 여전히 새들의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 있다. 바로 연료의 효율문제다.
새들 가운데는 3천㎞가 넘는 거리를 무착륙으로 비행하고도 체중감소가 60g도 안되는 것이 있다. 그런데 비행기가 소비하는 가솔린의 무게는 이보다 훨씬 비율이 높다. 새와 비행기의 연료 효율은 대략 1천배나 차이가 난다. 생체모방 과학은 겉보기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박상준, 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