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과 업무제휴를 맺고 있는 H사의 박 부장은 요즘 아주 즐겁다. 올초 회사에 인터넷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 업무가 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일일이 프린터를 해서 팩스를 전송할 필요없이 전자우편을 보내면 되고 일본내 기업정보의 입수도 쉬워졌다. 상대 회사도 기본적인 자료는 대부분 홈페이지를 통해 얻기 때문에 따로 요청하는 일이 없다.
이에 반해 한 온라인서비스 업체의 고객상담 창구에 근무하는 김씨는 요즘 회사 분위기가 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도 있지만 얼마전 구축을 완료한 콜센터시스템 도입 영향이 크다.
이 시스템이 가동된 이후로 관리자는 누가 몇 분 동안 어떤 내용으로 얼마간 상담을 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열람할 수 있게 됐다. 간부들은 숫자만 가지고 능력을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동료들의 실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정보통신으로 명암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확실히 회사분위기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S사 김씨. 사내 게시판이 가동된 이후 사원들의 불만사항이나 건의사항은 거의 대부분 1주일 안에 해결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건의를 해도 과장, 부장 등을 거치면서 묵살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아주 작은 일이라도 조치사항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사원들도 조그만 일이라도 있으면 게시판에 올리기 때문에 꽤 많은 사원들이지만 한가족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정보통신기술로 「우리는 하나」라는 공감대를 심어주는 대목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네트워크장비업체인 K사는 최근 사옥을 이전하면서 사원들이 어디에 전화를 걸어 얼마나 오래 통화를 했는지 통계를 내주는 사설교환기를 도입했다. 700서비스 등 전화요금이 많이 나오는 전화서비스를 차단했음은 물론이다. 회사에서 실제 사원들을 대상으로 통화요금 통계를 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로 직원들은 마음놓고 전화하기가 어려워졌다고 고백한다.
많은 기업들이 경비를 절감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앞다퉈 새로운 정보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보시스템의 도입을 놓고 많은 기업들이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으로 불필요한 업무가 줄어들었다며 반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만큼 노동강도가 강화됐다는 사람도 많다.
가장 큰 요인은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도입으로 개인의 실적이나 업무내용이 바로 수치로 나타나기 때문.
L백화점이 최근 도입한 「손익관리시스템」을 이용하면 전국의 각 점포에서 어떤 거래선이 이익을 많이 내고 어떤 영업사원이 매장관리를 제대로 하는지 바로 가려낼 수 있다. 휴대폰과 무선호출기의 보급으로 「연락이 안돼서」란 변명은 이제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됐다.
일의 강도가 높아진 것과 함께 일부 시스템은 지나치게 사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이 감시,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마저 받고 있다.
미국의 SSB사는 최근 직원이 온라인으로 포르노를 전송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전자우편 감시시스템을 도입했던 것이다. 또 다른 컴퓨터 회사는 지난해 음란사이트를 항해했다는 이유로 20여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한 외신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기업 3개 중 하나는 직원들의 사내 음성메일, 전자우편, 인터넷 접속, 심지어는 키보드의 구체적인 사용내역까지도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미국의 슈퍼웨어사가 내놓은 스마트알렉스(SmartAlex)라는 프로그램은 직원들이 인터넷으로 「딴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준다. 직원들의 PC에 「섹스」 「스포츠」 「오락」 등 미리 등록해놓은 단어나 이미지가 나타나면 자동으로 그 스크린을 저장하고 그 이미지가 나타난 시간까지 알려준다. 이외에도 직원들이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막거나 감시하는 프로그램이 수십개나 된다. 대부분 청소년들의 음란사이트 접속을 막기 위해 개발된 것이지만 기업들의 이용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외부 네트워크로부터 불법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방화벽도 최근 「내부 직업 감시용」으로서의 역할이 높아지고 있다. 이외에 인트라넷이나 그룹웨어를 이용하면 사원들의 스케줄 통제까지도 가능한 실정이다.
이처럼 직원들에 대한 기업의 감시가 강화되는 것은 정보기기를 이용한 업무가 늘어난 것 못지 않게 이를 이용한 「딴 짓」도 늘어났기 때문.
한 대기업의 간부는 『최근 기업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PC를 이용해 게임이나 불필요한 웹서핑을 하는 직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미국의 자료이기는 하지만 전체 응답자의 45%가 직장의 컴퓨터를 이용해 소프트웨어를 개인적인 용도로 복사하거나 인터넷쇼핑 등을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같은 「딴 짓」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새로운 시스템 도입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사원들의 업무행태는 기업문화나 조직의 운영과 많은 연관이 있고 정보통신 기기는 사원들에게 「족쇄」가 아니라 「날개」를 달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기능의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죠. 처음 무선호출기를 사원들에게 배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족쇄」로 인식했지만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새로운 시스템과 관리체계는 사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줘야 비로소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죠.』 한 정보통신업체 전산실장의 말이다.
새로운 정보기기가 「편리한 도구」가 될지 「감시의 눈」이 될지는 결국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결정한다는 뜻이다.
【장윤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