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발표되고 이들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나 유명한 시장조사기관에서는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기존의 시스템을 대체할 것이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들은 곧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발표한다. 또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여러 업체에서 개발했거나 이미 시판에 들어간 제품들을 나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금방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인 양 떠들다가도 어느 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누구도 다시 언급하지 않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와는 반대로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기술이 갑자기 큰 영향을 미치면서 무대 전면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이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동안 일반 사용자들에게 유용성을 인정받고 점점 세력을 넓혀가는 평범한 기술이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나 시장조사기관의 실수는 고쳐지기는커녕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개발자, 투자자, 전문가 및 시장조사기관 그리고 매스컴 사이의 지나친 경쟁심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나 여기에 투자한 사람들, 즉 이권이 개입된 당사자들이 기술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발자들은 개발비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개발이 진행되는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하며 문제점은 숨기는 경향이 있다. 투자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개발자들의 보고를 낙관적인 시장 예측으로 포장한다. 또한 다행히 개발이 끝나고 판매가 개시된 후에는 초기 판매율과 열렬한 지지자들의 반응을 토대로 희망적인 장기 예측을 발표하곤 한다. 그러나 초기 사용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열기가 걷힌 후에 이들이 아닌 일반 사용자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지는지가 실제로 미래를 좌우하게 마련이다.
시장조사기관들은 개발자나 투자자의 이러한 경향에 부채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조사기관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시장조사기관들보다 먼저 새로운 시장 기회를 예측하고 여러 가지 자료를 만들고 결과물을 출판해야 한다. 즉 시장조사기관들에는 속도가 생명인 셈이다. 따라서 이들은 빨리 결과를 내기 위해 개발자나 투자자에게 직접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자나 투자자는 찾기도 쉽고 언제든지 인터뷰에 응할 태세가 돼있지만 반대자들은 찾기도 어렵고 인터뷰에도 적극적이지 않아서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일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도 대부분이 개발자나 투자자가 추천해주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일반 고객들과는 달리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고 인터뷰에도 적극 참여하며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시장조사기관에서는 전체 고객을 상대로 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시간과 비용문제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도 다른 전문가들보다 먼저 그리고 많은 글을 쓰지 않으면 그들간의 경쟁에서 뒤쳐지게 된다. 따라서 시간에 쫓기고 많은 기술을 동시에 분석하다보면 구체적인 자료보다는 희망에 근거한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 쉽다.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많은 생각을 해야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 위해서는 개발자나 투자자의 의견에 동조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매스컴에서도 다른 매스컴보다 먼저 차세대를 이끌 중요한 경향이나 새로운 기술이 될 만한 것을 찾아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은 개발자의 이야기와 시장조사기관의 낙관적인 전망이 어우러져 흥미진진한 차세대 혁명 스토리로 포장되게 된다.
결국 개발자, 투자자, 전문가 및 시장조사기관 그리고 매스컴은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고 서로의 말에 대한 인용을 거듭하면서 신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엉터리 예측은 아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낫다. 그러나 다양한 경로로 접할 수 있는 예측 정보에 무조건 귀를 막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반 사용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문가나 시장조사기관의 예측을 무조건 신봉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예측은 예측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와 허상을 구별하는 것은 일반 사용자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생기더라도 빨리 대응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안철수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