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뎀 제조업체들의 가격경쟁이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용산전자상가 등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내장형 56k 모뎀가격은 한달 전까지만 해도 개당 평균 8만원대였으나 지난달 말 현재 6만원대 수준으로 떨어짐으로써 모뎀업계의 수익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같은 가격경쟁은 지난달 초 자네트시스템이 록웰의 신형 칩세트를 채용한 v.90모뎀을 구형 제품보다도 2만원정도 싼 가격으로 공급하면서 촉발됐으며 PC라운드, 새롬기술 등 다른 모뎀업체들도 이에 대응해 모뎀가격을 7만원 이하로 내리면서 출혈판매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한 모뎀업체 관계자는 『이미 성능이 평준화된 모뎀시장에서는 경쟁사 제품보다 몇천원만 비싸도 매출이 급감한다』면서 『요즘같은 가격인하경쟁을 따라가다가는 버틸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일부 모뎀업체는 생산량을 줄이거나 아예 소매시장을 포기하고 있으며 맥시스템의 경우는 수출에만 전념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모뎀업계 전반의 채산성 악화는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상대적인 고가정책을 유지해온 외산 모뎀의 타격이 심한 편인데 US로보틱스의 경우 지난 한달 동안 모뎀 단품판매량이 1천대에도 못미치는 등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져 그동안 대대적으로 펼친 v.90 업그레이드 행사를 통한 마케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뎀업계 주변에서는 모뎀가격하락의 주역으로 나선 자네트의 저가 공급정책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나 자네트의 한 영업담당자는 『v.90모뎀이 일반화된 이상 기능보다는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합당하다』면서 비난을 일축했다.
이러한 모뎀 가격경쟁은 이미 마케팅 차원을 넘어 업체간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시장붕괴를 감수하더라도 끝을 보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 모뎀업체 관계자는 『56k 모뎀 소매가를 4만원대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일부 업체가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뎀가격경쟁은 유통업체에도 큰 주름살을 남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IMF사태로 인해 작년보다 일찍 비수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모뎀 유통업체들에 주마다 더욱 싼 모뎀이 대량으로 흘러드는 바람에, 도매가 이하로 판매해야 하는 악성재고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용산전자상가 내 한 모뎀유통업자는 『지난주부터 판매가 거의 중단돼 시장기능이 정지된 상황』이라면서 『모뎀업체끼리 최소한의 가격제한선이라도 정해서 소매가 5만원선이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뎀업계 주변에서는 이번 가격경쟁의 최종적인 승리자는 시장점유율보다는 손해를 안 보는 마케팅전략을 쓰는 회사가 될 것 예상하고 있다. 개당 5만원 이하로 모뎀을 「길바닥에 뿌리는 장사」를 하는 회사보다 모뎀수출을 통해 내실을 쌓아가는 회사가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 등으로 말미암아 최근 모뎀업계 주변에서는 이미 성능이 평준화된 모뎀시장에서 가격이 유일한 경쟁요소이지만 가격경쟁으로 인해 시장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상황만은 피하자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배일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