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밀라노에서 세기의 테너 엔리오 카루소가 가곡 10곡을 취입,축음기와 음반산업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1877년 에디슨이 포노그래프를 발명한 이래 「고가의 장난감」으로 취급되던 축음기와 음반(레코드)의 품격이 높아지는 한편 명가수와 저명한 연주가들이 레코드 취입을 앞다투면서 음악상품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03년∼1906년 사이 이탈리아에서 16명의 가수가 산발적으로 오페라 「트로바토레」 전곡을 취입했고,독일에서는 1907년에 「박쥐」 「카르멘」등의 오페라 전곡이 취입됐다. 프랑스에서도 1914년까지 「파우스트」 「카르멘」 「로미오와 줄리엣」등 9편의 오페라 전곡이 취입되는등 레코딩 바람이 일었다.
당시(1901년∼1925년) 가정용 레코드의 크기는 지름 25㎝와 30㎝로,회전속도는 1분간 78과 80회전으로 표준화됐다.
그 사이 토머스 에디슨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 「콘테사이드」라고 일컬어지는 일종의 플라스틱 표면에 「상하 움직임 80회」의 두꺼운 중층 레코드가 시판됐다. 음향재생에 다이아몬드 바늘을 사용,당시 가장 우수한 음질의 레코드였다. 에디슨은 또 1926년에 2.54㎝당 1백50개 홈을 새겨 25㎝ 편면으로 16분,30㎝ 편면으로는 20분간 연주할 수 있는 레코드를 판매했다. 이 레코드는 상대적으로 장시간 재생이 가능해 레코딩 업계를 자극했다.
1924년 벨연구소가 완성시킨 마이크로폰을 이용한 취입방법은 레코드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이 취입방식은 1895년부터 계속됐던 연구과제로 마이크로폰과 앰플리파이어를 사용한 전기녹음으로 주파수특성과 다이내믹레인지(구동범위)가 넓어지고 음질이 향상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같은 마이크로폰 취입방식은 5백∼3천Hz였던 기존의 레코드 음역을 2옥타브 반 가량 확대,1백∼5천Hz를 실현했다. 이후 음역이 30Hz∼5천5백Hz로 확대됨과 동시에 재생음향의 충실도가 높아졌다. 이 방식은 1분간 78,80회전을 표준으로 해 레코드 사이즈를 10인치와 12인치로 정형화했다.
이 방식이 레코드 취입에 적극 사용된 것은 1925년∼1926년의 일로 각종 실내악곡,관현악곡에 대한 전곡 취입이 이루어지는 등 이후의 레코드 음악 황금시대를 열어가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