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전자가 코오롱전자를 인수, 합병키로함에 따라 국내 인쇄회로기판(PCB)용 원판 시장 구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코오롱전자는 오는 30일부로 (주)코오롱, 코오롱유화, 코오롱건설이 보유하고 있던 코오롱전자 주식 지분 93.37%인 4백42만 5천6백90주 전량을 두산전자에 매각키로 합의함에 따라 두산전자는 코오롱전자의 경영권과 PCB 원판 사업과 관련된 영업권, 종업원을 인수해 이르면 9월말 경 두회사를 하나로 합칠 계획이다.
우선 이번 조치는 국내 PCB원판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던 두 회사가 합병돼 국내 PCB 원판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할 수 있는 거대 PCB 원판공급업체가 탄생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주목을 끈다.
아직까지 공정거래위원회가 두산전자와 코오롱전자의 합병에 관한 최종 유권 해석을 내리지 않고 있어 두 회사가 원만히 합병될지 여부는 당분간 지켜 보아야 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민간 기업이 사업구조조정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인수, 합병(M&A)으로 인해 특점 제품에서 독과점 현상이 발생할 소지가 있더라도 이를 용인한다는 게 최근의 정부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두산전자와 코오롱전자의 합병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90년초부터 PCB원판을 본격 공급해온 코오롱전자가 이번에 두산전자에 매각되게 된것은 수년간 지속돼온 경영부진에 따른 누적적자를 견디지 못한데 기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코오롱전자는 PCB원판 사업에 참여한 이후 거의 매년 적자를 기록해 자본금이 거의 잠식될 정도로 누적적자가 심화됐으며 최근들어 국내 전자, 정보통신기기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내부 경기 침체로 인한 PCB원판 공급 과잉 사태까지 발생, 더 이상 독자적으로 PCB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 매각을 결정하게 됐다고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설명했다.
두산전자가 연산 6백만장 규모의 페놀계 PCB원판 및 연산 1백80만장 정도의 에폭시 계열 PCB원판 생산 능력을 지닌 코오롱전자를 인수하게 됨에따라 두산전자는 연 2천4백만장의 페놀계 원판 및 5백80만장 정도의 에폭시계 원판 생산 능력을 지닌 세계 최대 PCB원판업체로 거듭나게 됐다.
코오롱전자를 흡수하게될 두산전자의 이같은 생산능력은 국내 페놀계 PCB원판 연간 수요 1천 4백만장을 두배 이상 초과하는 규모이고 에폭시 부문도 3배 이상에 달하는 공급 여력이다.
한편 이번의 두 회사 합병은 다방면에 걸쳐 국내 PCB 산업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선 거대기업으로 재탄생하게된 두산전자는 공급과잉에 허덕이고 있는 PCB 원판 공급 구도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 본격나서지 않으면 급격하게 커진 몸을 추수릴 수 없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공룡의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는 기회이자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고할 수 있다.
여기에다 그동안 공급자이면서도 우월적 지위를 행사해온 두산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코오롱전자와 의식적으로 협력관계를 넓혀온 국내 주요 PCB업체들은 이번 합병 작업을 경계의눈초리를 갖고 바라보고 있다. 원판 시장에서 패권적 지위를 확보한 두산전자가 국내 PCB업체를 마음대로 주물렀던 지난 80년대초의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PCB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 PCB업체의 경우 두산전자에 대한 두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이지만 대기업 및 중견 PCB업체들은 합병에 따른 원판 공급 지배력 확대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이미 대부분의 업체들이 일본, 미국, 독일 등 외국 원판업체와 원판 공급 계약을 체결해 놓고 있고 LG화학이라는 국내 대기업이 이 시장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어 두산전자에 매달릴 입장이 아니라는 것.
여기에다 엔화 약세를 등에 엎고 일본계 원판업체들이 국내 PCB업체와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어 두산전자와 코오롱전자의 합병은 오히려 국산 원판의 시장 점유율을 떨어뜨리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두산전자와 국내 주요 PCB업체간의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가 당분간 지속되는 조정기를 거친 후 국내 PCB 산업은 새로운 시장 구도를 그릴 전망이다.
<이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