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화가이며 한국 제네럴일렉트릭(한국GE) 사장인 강석진씨는 화우(畵友)들 사이에 「물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통한다.
「이 땅의 산과 들과 그 속의 나무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바뀌는 이 세상의 모습과 색깔들/ 모를 심은 물논과 산자락 밭이랑이들/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 그들 삶의 내음새/ 산자락 구비 어디에선가/ 뻐꾸기소리와 함께 들려올 것만 같은/삶의 슬픔과 기쁨이 묻어 있는 애환의 가락들/ 슬픔을 감춘 사람들의 소박한 웃음. 이런 모든 것./ 이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그리고 싶었습니다./(작가노트 中에서)」
지난 95년 겨울, 첫 개인전을 열면서 작품집 속에 수록했던 강석진 사장의한글에서도 엿볼 수 있듯, 그의 붓은 언제나 농촌풍경, 그 중에서도 물논에 닿아있다.
『저더러 「물논을 전매특허 낸 친구」라고 농을 던지는 화우들도 있더군요. 구불구불 흘러가는 물논은 언제 봐도 정겹습니다. 특히 모를 심은 지 3~4주쯤 지난 6월이면 물과 모와 하늘이 논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흰 수건을 둘러쓰고 초여름 볕에 나앉은 아낙네는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구성진 모심기 노래 한 소절로 땀을 식히던 어린시절 큰누이의 모습인가 하면 어느새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에로틱한 여인네로도 보이죠.』
이러한 「물론 예찬」은 경제학과 출신으로 대기업 수출부와 미국 금융투자회사 아시아 담당 부사장을 거쳐 한국GE의 사령탑을 맡게된 그의 화려한 이력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강사장의 오랜 벗이기도 한 박찬선 시인은 『산 곱고 물 맑은 상주에서 태어나 해지도록 붕어와 모래무지를 잡으며 자란 소년기의 체험이 그림에서 배어난다』고 말한다.
화가로서의 강석진 사장이 우리의 농촌 풍경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부터 내몽고의 천산, 남부 러시아까지 틈만 나면 스케치 여행을 다닌다. 한번은 백두산을 만나기 위해 중국 신장성에서 천산산맥을 넘다가 12인승 쌍발비행기가 엔진고장을 일으켰다.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가까스로 회항한 후에도, 그는 비행기가 수리되기를 기다려 또다시 만년설 위를 날았다. 징기스칸이 신전을 세웠다는 칸 텡그리 봉을 보려고 소련제 군용 헬리콥터를 빌려 타고 해발 4천 미터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중국 집안현에서 배를 빌려 노호초댐까지 내려오며 압록강 건너편으로 지나가는 북한의 농가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하얼빈의 731부대 주변에 세워진 천막촌이나 인도 뉴델리의 무너진 성터, 미국의 인디안 보호구역에도 다녀왔다.
이처럼 오지를 마다 않고 찾아다니는 그를 가리켜 미술평론가 김영재씨는 「민족원형의 생기를 담는 화가」라고 부른다.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풍경들 속에 담긴 문화의 원형을 화폭속에 붙잡아두려 하는 그의 작가정신을 표현한 말이다.
미술협회 서양화 분과 회원이며 중견화가인 강석진 사장에게 「나의 취미」라는 코너는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25년간 삶을 풍요롭게 해준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는 언제 어디에서든 기꺼이 풀어놓을 수 있다.
최낙경, 노광, 차일만, 이태길 등 마음 맞는 화우들과 떠나는 스케치 여행, 일과가 끝나면 어김없이 찾아가 늦저녁 시간을 보내는 필훈동의 화실, 주말이면 붓끝에서 되살아나는 고향산천의 물논, 그리고 인터넷도 전화도 없는 오지에서 그림과 함께 하는 여름휴가가 있어서 그의 삶은 더없이 행복하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