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濟昌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 교수
최근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는 그동안의 거품이 걷히고 사상 유례없는 저성장과 고실업 사태를 맞고 있다.
이러한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한가지 매우 본질적인 것이 간과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환위기는 말 그대로 외환이 바닥나는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져 선진국 시장에서 밀려나고 이로 인해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돼 결국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까지 몰린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국내 기업은 기술수준이 향상되는 속도에 비해 임금수준이 월등히 높아져 고급제품은 선진국에, 저가품은 후발 개발도상국에 밀려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선진국 문턱에 서 있다고 하는 우리나라가 다시 개발도상국 상태로 후퇴할 수는 없고 결국 우리 경제가 살 길은 선진국과 싸워 이기는 길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왜」 기술개발을 해야 하는지와 「어떻게」 기술개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왜」 기술개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TV, VCR 등 가전제품은 국내 가전업체가 만들어 팔 때마다 대당 3∼5%의 로열티를 외국에 지불하고 있고 휴대폰은 핵심칩을 별도로 구매하는 것을 빼고도 6.5%를, 그리고 차세대 가전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DVD플레이어는 무려 15%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형편이어서 국내 기업들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앞으로 멀티미디어시대를 맞아 황금시장으로 떠오를 디지털TV, HDTV, 디지털 캠코더, 영상전화 등에 있어서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이러한 첨단 분야일수록 핵심기술이 없이 단순한 생산기술만으로 경쟁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기 때문에 국내 전자산업의 총체적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로열티를 비롯한 기술료 수지를 보면 미국은 매년 2백억 달러의 기술 로열티 흑자를 내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매년 1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기술개발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왜」에 대한 해답보다 어렵다. 정부에서 할 일을 한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과학기술인들을 대거 기용해 정책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부처에서조차 과학기술 관료보다는 행정관리들이 우대를 받고 있다. 과학기술인들은 사고의 폭이 좁으므로 행정관료들로 해금 과학기술을 익혀 정책을 이끌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보다도 과학기술인들로 해금 행정을 익히게 해 전문성을 살린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이 누리고 있는 대호황이 「정보고속도로」를 주창한 앨 고어 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기술 엘리트들의 기여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기업도 더욱 기술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특히 기술개발의 성과에 대해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엔지니어들이 기술개발에 인생의 승부를 걸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해 스포츠 스타나 인기 연예인들처럼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면 기업과 연구소는 저절로 24시간 불야성을 이룰 것이다.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스타를 꿈꾸는 것 이상으로 과학기술자가 돼 세계적인 과학자나 기술자가 되겠다는 어린이들이 많아질 때 국가 경쟁력은 자연히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기술력은 스포츠나 연예인들의 분야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이고 현재와 같은 수난을 두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 가장 절실한 힘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