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월드] 전자상거래 패권경쟁 "후끈"

지금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인터넷이라는 무한보물창고를 거대한 사이버쇼핑몰로 재건축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누구나 출입문 없이 드나들며 원하는 정보를 꺼내오던 인터넷이 앞으로는 전자상거래(EC:Electronic Commerce)의 장으로 진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낸 세계 굴지의 정보통신 및 영상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은 21세기의 황금밭 EC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EC란 말 그대로 가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 지구촌을 둘러싼 거미줄 네트워크 위에서 머리핀처럼 값싼 소비재부터 고급 컨설팅 정보나 특화된 데이터베이스까지 유무형의 가치들을 팔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전자상거래 시장의 올해 규모는 약 5.2억 달러로 추정된다. 꿈의 공장 헐리우드가 매년 여름 흥행수익 1억 달러를 웃도는 블록버스터들 찍어내는 것과 비교하면 무시해도 될 만한 숫자다. 산호세 머큐리지는 최근 인터넷 상업 웹사이트들이 광고유치 실패로 무더기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언뜻 보면 「아마존사」를 제외하면 EC를 이용해 뚜렷하게 돈을 버는 전자상점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데이터퀘스트나 IDC 처럼 권위있는 시장조사기관은 불과 2년 후인 2천년엔 가상마켓에서 이루어지는 전자거래가 최소한 65억 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것은 컨텐츠와 컨슈머 대상의 판매 아이템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 인프라 구축을 위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장비와 전자결재시스템, 보안솔루션 등 EC관련 비즈니스를 모두 합친다면 2천1년에는 그 규모가 무려 2천5백억∼3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과연 언제부터 노다지가 쏟아질 지는 모르지만 세계 굴지의 정보통신 및 영상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은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EC 시장에서의 영토확장을 꾀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업체는 온라인서비스 업계의 고질라인 아메리카 온라인(AOL). 이 회사는 정보장사와 함께 초대형 쇼핑몰을 만들어 컨슈머들을 유혹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는 2위 업체인 컴퓨서브를 인수했는가 하면, 유럽과 캐나다 일본을 돌며 무차별 네티즌 사냥을 감행해 가입자 1천 2백만명을 확보했다. 지난해말로 1억명을 돌파한 인터넷 인구의 약 10분의 1을 차지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온라인 컨텐츠업체에서 EC 지구촌 본부로 AOL제국의 위상을 높히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역시 소프트웨어 시장 천하통일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겉보기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정보가전용 OS를 놓고 결전을 벌이거나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넷스케이프와 한 판 승부를 벌이느라 바쁜 것 같지만 속셈은 역시 전자상거래 시장. 윈도98을 이용하면서 입력해야 될 정보가 부쩍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라이프 스타일과 구매패턴에 따른 방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려는 MS의 포석 때문이다.

과거 컴퓨터시장에서 맞붙었던 IBM과 휴렉팩커드(HP)는 격전장을 옮긴 듯 전자상거래 시장으로 옮겼다. 두 회사는 머천트 서버를 포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대금결재시스템을 일괄 공급하는 EC 토탈 솔루션 제공 분야에서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특히 IBM은 「e틸」이라는 전자상거래용 머천트 서버 및 국제표준 프로토콜 SET(Secure Electronic Commerce)를 기반으로 하는 대금결제 부문에서 한 수 위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는 유서 깊은 회사 이름을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에서 「Internet Business Machine」으로 바꾸자는 얘기가 나올 만큼 전자상거래에 기대를 걸고 있다.

HP도 베리폰사 인수를 통해 확고한 대금결재 인프라를 구축한 후 오라클, 넷스케이프 등과 공동전선을 구축해 추격전에 나섰다. 이 회사는 네트워크 업계의 거인 시스코 시스템즈와도 제휴해 양사간 원스톱 쇼핑환경 구현을 선언하는 등 개방형 전자상거래 플랫폼 전략으로 어느정도 IBM 따라잡기에 성공했다.

월트디즈니를 비롯한 영상엔터테인먼트 그룹들의 경우는 풍부한 컨텐츠만 가지고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셈. 이들은 반세기 전에 일어난 TV혁명이 처음엔 하드웨어 제조업체를 살찌웠지만 요즘 휘파람을 부는 곳은 TV라는 미디어를 통해 정보와 엔터테인먼트와 전달하는 컨텐츠업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21세기는 문화를 향유하는 시대이므로 EC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될 아이템은 바로 영상 컨텐츠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편으로 정보통신업계의 공룡들과 파트너쉽을 맺으며 EC시장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그밖에 전자상거래 표준 프로토콜 SET를 제안한 신용카드업계 전통의 맞수 비자 인터내셔널과 마스터사도 고도의 암호 및 시스템운영 기술을 이용해 인터넷전자거래 희망자들의 신용을 평가해주는 인증서비스업체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21세기 황금어장 EC시장에서 누가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는 2∼3년만 기다리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