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같이 전자파의 숲 속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전자제품에서 끊임없이 전자파가 방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 보고된 통계치에 따르면 전자파의 방출량과 강도에 따른 순위는 청소기, 믹서, 컴퓨터, 전기담요, TV순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전자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건강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오래 전부터 이것을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 유해 전자파에 대한 안전기준치를 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컴퓨터와 TV 사용자의 전자파 노출방지를 위한 권고지침이 발표됐다.
그런데 이 전자파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전자파의 방출로 인한 정보의 유실 위험이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가로채 분석을 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컴퓨터에서 현재 무슨 작업을 하고 있으며 프린터에서는 어떠한 내용이 인쇄되고 있는가를 소상히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은 행위를 전자파의 방수(傍受)라 한다. 마치 송수신 내용을 엿듣는 행위를 도청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개념인데, 이것을 일명 템페스트(Tempest)라고도 한다.
이 템페스트 기술은 1988년에 이미 네덜란드의 빔 반 에크(Wim van Eck)가 컴퓨터의 전자파를 방수해 그 내용을 재현함으로써 정보유실의 위험을 입증한 바 있다. 또한 영국의 BBC에서는 그로 하여금 런던 시내의 한 복판에서 특정 컴퓨터의 작업 내용을 방수하게 해 텔레비전에 방영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필자도 이와 유사한 시범 장면을 최근 프랑스에서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이 템페스트 계획을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1974년 이후에는 정부와 기업이 합동으로 기술과 장비를 개발해 국내외의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현재 이 장비를 제작하는 회사가 70여개에 이르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NATO에서도 전자파의 표준까지 만들어 무기제조와 수출입 통제에 적용한 바 있다.
전자파의 방수행위를 방어하거나 억제하는 수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쉬운 방법은 고도의 템페스트 방어장비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용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값싸고 손쉽게 대응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어수단부터 우선 시행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을 몇가지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전자파는 그 특성상 컴퓨터와 프린터를 통한 직접방사 이외에도 실내의 전화선이나 수도관, 스팀관 등의 여러 금속물체를 통해서도 방출될 수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컴퓨터 옆에 전화기를 두어서는 안된다. 비록 통화를 하지 않더라도 그 전화선을 따라 컴퓨터의 전자파가 방출되기 때문이다.
더욱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전산실이나 건물 자체를 전자파의 방출로부터 차폐시키는 것이다. 현재 전자파를 흡수하는 자재까지 나와 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위장 전자파를 혼합시켜 방출하는 것이다. 또 중요한 작업은 여러개의 컴퓨터로 둘러싸인 중앙위치에서 실시하도록 해 방수자가 목표로 하는 전자파의 식별을 혼란시켜야 한다. 이울러 중요한 작업 후에는 그 내용을 컴퓨터의 모니터에서 신속히 지워야 하며 실내의 모든 금속물체는 접지선에 연결시켜야 한다.
최근에는 전자파가 컴퓨터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무기로도 사용되고 있다. 고주파 에너지를 이용한 전파총(HERF Gun)이나 전자파 방사폭탄(EMPT Bomb)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면 고주파 전파총으로 낮게 접근하는 비행기에 전자파를 발사하면 그 항공기 내에 있는 모든 컴퓨터 시스템이 마비돼 비행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무서운 무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여객기를 탈 때 기내에서 전자제품 사용을 금지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연유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무기들은 이미 걸프전에서 실전화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전자파 문제를 더이상 건강 상의 문제에만 국한시켜 생각해서는 안된다. 전자파를 통한 정보유실은 물리적 수단에 의한 유실이나 시스템 침투를 통한 유실 못지 않게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제전의 국제환경 속에서 산업스파이나 첩보수집 활동을 방어하기 위한 국가안보나 국익수호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재우 동국대 국제정보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