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秉珪 한국아비드 대표
영화, 방송, 애니메이션, 멀티미디어 등의 영상산업은 고부가가치 사업이라는 특성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이 분야에서 젊음을 불사르고 있다. 지난 95년 3월 케이블TV, 지역민방 등의 잇단 출현으로 일기 시작한 국내 영상산업의 특수가 이 분야에 대한 관심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결과다. 특히 앞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위성방송, 디지털 지상파방송 등에서 방송장비 수요가 꾸준히 늘 것으로 예상돼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 분야에서는 거의 첨단 영상제작장비 공급에만 치우쳐 온 탓에 정작 그 장비를 사용해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인적자원은 드문 게 사실이다. 하드웨어의 공급은 봇물을 이루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소프트웨어, 인력은 턱없이 모자란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간 비싼 달러를 주고 국내에 들여온 고가의 외산 장비들이 당초 도입목적과는 달리 현장에선 기술력의 취약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얘기가 종종 들리고 있다. 이는 인력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나게 하는 것이다. 기업체들간 무분별한 스카우트전이 펼쳐지고 있는 등 「빈곤의 악순환」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케이블TV, 지역민방 등의 잇단 출현으로 현재 국내에는 거의 모든 외국 영상장비 공급사들이 지사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사 중심이든, 사용자 중심이든 일부 영상 분야에 대한 기술교육이 꾸준히 실시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당연시되나 정작 중요한 것은 현직 종사자들에 대한 국외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시회 참관 등과 같은 단기교육보다는 소수의 인력을 선발해 유명한 학교에 3년 정도 유학을 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현직에서 대략 5년 정도의 경험만 있으면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한 한계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장기교육에 따른 실패를 적지 않게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단기교육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기교육도 잘만 활용하면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단기교육의 속알맹이를 들여다보면 기대치 이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례를 들어 그간 국내 업체들이 전시회에 참관할 경우 실무자들이 아니라 기술을 잘 모르는 관리자나 높은 직급의 사람들이 상당 부분 외유 정도로 생각하고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이 「주마간산」식으로 전시회를 훑어보게 되고 정작 기술정보에 목이 말라 있는 실무자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그들이 가져다 주는 카탈로그밖에 접할 수 없는 등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전시회는 신제품에 대한 세미나와 신기술에 대한 워크숍이 필수적으로 동반되는데 그런 장소에서 우리나라의 실무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비록 단기간에 이뤄지고 있는 전시회일 망정 꼭 가야할 실무자 중심으로 참관이 이뤄지는 풍토가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 참관자도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낭비요소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거의 모든 전시회가 웹사이트를 개설해 놓고 있는 관계로 국내에서도 기술관련 행사의 모든 내용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비록 「IMF사태」로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이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고, 이를 위해 작은 일일지는 모르나 「잘못된 관행」을 쇄신하는 일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첨단 영상장비들은 단순히 컴퓨터기술만의 발전으로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특수효과를 만들어낸 조지 루카스가 이용한 것은 광학을 기반으로 하는 아날로그 장비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반복됐고 이것이 컴퓨터와 만나면서 첨단 영상장비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를 가능토록 뒷받침한 것은 바로 조직의 하부구조, 즉 실무자들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