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宗錄 한국통신 네트워크본부 통신망기획팀장
올 들어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전화 이용자가 최초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백12년 전 구한말 궁중 수동식 교환을 시작으로 1가구 1전화 시대 진입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온 유선전화의 이용이 10년 안팎의 역사에 불과한 이동전화로 수요가 전환되는 바람에 한풀 꺾인 반면 이동전화는 유선전화 보급의 50%에까지 이르게 됐다.
인구 1백명당 전화보급률이 미처 50%에 이르기도 전에 포화기를 지나 감쇠기에 이르고 있다. 미국, 캐나다, 스웨덴이 인구 1백명당 60%의 보급률에 이르렀고 일본도 55%에서 포화점을 보인 반면 우리의 경우는 무선전화 등 대체수단의 등장과 경기침체로 인해 이미 성장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화이용 수요가 감소한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정보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루하루 정보의 폭발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기말이다. PC보급이 80년대 후반의 전화보급률에 이르렀고 통신의 이용주체가 과거 인간 대 인간에서 이제는 인간과 기계(컴퓨터, 팩스 등), 기계와 기계로 이어지는 새로운 패턴으로 바뀌면서 통신망으로 타고 흐르는 정보량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정보량의 증가는 통신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고, 통신 네트워크도 이제는 재래식의 단순한 모습으로는 이용자의 복잡한 요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다음 세대 통신망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툴 개발이 정보통신업계의 핵심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통신사업자, 산업체, 연구소 등은 이러한 급속한 정보량 증가에 관심을 갖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며, 연구개발 방향 및 서비스 개념도 새로 정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새로운 정보통신의 요구는 기존 통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정보의 성장은 산업의 정보화와 정보의 산업화라는 구조적 사이클에 휘말리며 엄청난 규모로 폭발해 가고 있다.
이런 새로운 환경은 1차로 고속성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는 전화망을 근간으로 해온 기존 통신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공간이 전용회선이라는 분야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이제는 수십 기가급 광통신이 뒷받침됨으로써 이용자의 고속수요도 수십 킬로급에서 수 메가급을 거쳐 기업통신의 근간이 되는 수십 메가급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이들의 서비스가 과거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로 단순 연결되는 개념에서 이제는 그 요구가 많아짐에 따라 운용관리상의 한계에 봉착하게 됐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이미 80년대 후반 미국에서 DANS(Digital Access Node System)라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이어 이 기술을 좀더 발전시켜 90년대 초에 프레임 릴레이, 고속 패킷교환의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 이를 통해 포인트 투 포인트 방식에 의존해오던 고속전용 통신망의 개념이 네트워킹 형태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그 후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비동기식 셀교환 방식인 비동기전송방식(ATM) 개념이 등장하면서 초고속 정보통신망이란 용어로 정착하게 됐지만 이것 역시 당분간 그 수요의 근간은 수 메가급에서 수십 메가급의 엔터프라이즈용 전용회선 분야에서 주종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초고속 정보통신이란 포괄적인 이름으로 탄생되어온 이 사업이 고화질 영상통신, 주문형비디오(VOD) 등 지나치게 미래의 이상적인 모습만을 강조해온 탓에 현실적인 서비스 부문을 많이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통신 네트워크」하면 거기에 걸맞은 단말기를 우선 연상하게 되지만 당분간 초고속 정보통신망은 고화질의 영상단말기가 아니라 다양한 고속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한 백본망 기능을 제공하는 「네트워크 오브 네트워크」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인터넷 이용자가 매년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향후 등장하게 되는 수천, 수만의 IP 및 ISP들을 어떻게 무리없이 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은 현실적으로 향후 10년간 매진해야 할 분야가 통신 네트워크 분야이며 이는 고속 디지털 전용망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연간 16% 정도의 고속 전용회선 서비스의 성장에 힘입어 전화 부문의 마이너스 성장을 만회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도 이 부문의 수요가 이미 연간 30%에 가까운 가히 폭발적 성장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의 네트워크로 지향하는 초고속 정보통신망도 현실적으로 고속화하는 폭발적 성장의 고속디지털 전용회선 수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제공하느냐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간 정부 주도로 개발에 힘써온 ATM 교환기 등 초고속 정보통신시스템과 주변장치들을 포함해 이용자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고속 디지털 가입자 선로기술의 표준화와 장비기술의 개발 축적 등이 입체적으로 전개돼 금년부터 본격적인 망구축의 시점에 와 있다. 기존 통신망의 성장 멈춤과 새로운 정보의 폭발적 생성,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틈새를 메우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탄생은 2000년이라는 또 하나의 밀레니엄으로 가는 중요한 징검다리임에 틀림없다.
이제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패러다임이 변화해 가는 고갯마루에서 새로이 펼쳐지는 이 분야의 기술과 서비스를 바라보는 시각이 산업계, 학계, 연구소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당분간은 좀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