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外奉 LSI로직코리아 사장
국내 통신시장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통신은 기지국에서부터 단말기까지 항상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적용되기 때문에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문형 반도체(ASIC)기술 발전은 결국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전자제품의 수명이 점차 짧아지고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고 얇으며 가벼운 제품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국내 ASIC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기술 하나로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로 부상한 미국 퀄컴사의 예를 보더라도 반도체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ASIC산업의 발전은 비단 반도체산업뿐만 아니라 국내 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어떠한가.
세계 반도체시장은 이미 비메모리 반도체의 대표주자인 ASIC이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을 뛰어넘어 전체 반도체의 약 40%를 차지하는 반면 국내 반도체시장은 메모리 반도체가 약 85%이고 ASIC이 5% 가량인 기형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80년대 후발주자로 반도체산업에 뛰어들었던 국내 반도체업계로서는 메모리 제품을 육성하는 것이 최선책이었지만 향후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
이같은 메모리 반도체 편중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은 수 년 전부터 이에 대비한 해결책으로 ASIC과 화합물 반도체 등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진행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여기서부터 출발한 30여개에 이르는 ASIC 전문 벤처기업들의 탄생은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아직까지 세계 수준과 격차가 크다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ASIC 전문 교육시설의 부재다. 대기업 내에 설치된 교육시설이 유일한 국내 현실에서 소수의 전문인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ASIC산업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시스템 전반을 설계하는 시스템 엔지니어의 양성은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국내 ASIC산업의 현주소다. 그나마 한국과학기술원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가 지속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희망을 주고 있다.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ASIC 생산시설의 확보다. 국내에서 반도체 일관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는 반도체 3사의 생산시설은 모두 반도체 양산에 집중돼 있어 다품종 소량생산 중심인 ASIC은 외면당하고 있다. 또 제조시설을 지정 디자인 하우스 외에는 개방하지 않는 반도체업체들의 폐쇄성이 겹쳐 시스템 개발 업체들이 미국, 일본, 대만 등 외국 ASIC업체들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ASIC업계의 덤핑 시비도 자금난에 허덕이는 업체들의 일면을 나타내는 고질병으로 꼽히고 있다.
전문인력과 생산시설의 확충이 국내 ASIC산업 발전을 위한 시발점이라고 보면 열악한 현상황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비메모리산업 육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으나 가시적인 실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근 들어 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한 ASIC 지원센터 설립과 정보통신용 ASIC 공동개발에 자금지원 등 일련의 조치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