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국내 네트워크 장비산업은 생과 사의 기로에 서있다.
기술, 가격경쟁력, 마케팅전략 등 장비 개발에서부터 판매까지 외국업체들의 끝없는 견제를 받고 있다. 더 이상 애국심 차원에서 호소할 문제도 아니다. 사활을 건 싸움에서 아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국내기업, 공공기관 사용자들이라고 해서 결코 동지가 될 수 없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아래선 더욱 그렇다. 업계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한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기업들의 릴레이 도산이 이를 대변해준다. 국내 네트워크업계가 벼랑 끝에 있는 형국이다.
네트워크연구조합의 한 관계자는 『국산장비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국내시장은 외산장비의 독무대가 되고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산 네트워크장비가 개발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사용해주지 않으면 개발의 의미가 전혀 없다』고 국산 네트워크장비의 구매를 촉구했다.
그는 또 『올해가 국내 네트워크 장비산업체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해』라며 『그 이유로 교실망사업이 본궤도에 올랐고 공공기관망 역시 유일한 시장으로 국산장비가 최대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등의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앞으로 기업의 운영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사용자들의 인식전환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국내 네트워크 영업담당자들의 가장 큰 애로는 네트워크 사용자들의 굳어버린 인식.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인식이 외산 위주로 편향되어 있어 어지간하지 않고는 국산장비가 통하지 않는다. 특히 교실망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업체들로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공인검증이다. 「공인」을 선호하는 사용자의 요구 때문이다. 외국 네트워크업체들의 경우 대부분 세계적인 성능측정기관인 톨리그룹으로부터 성능에 대한 검증을 받고 들어온 장비다. 이는 마케팅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공식자료인 셈이다.
반면 국내 전문업체들로서는 톨리그룹의 성능측정을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다. 성능측정에 드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개발에 드는 비용보다 성능을 인정받는 데 드는 비용이 더 크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 최근 네트워크연구조합에서 준비중인 장비 성능측정사업은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수출장비에 대한 공식인증은 되지 못할지언정 국내에서라도 인증될 수 있는 평가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쌍용정보통신의 네트워크담당 조성철 이사는 『국내 벤치마크테스트(BMT)를 통해 국산장비와 외산장비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사용자는 국산장비에 대한 신뢰성을 확인하고 업체로서는 자사장비의 장단점을 비교, 영업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각종 입찰 참가시 중소 전문업체를 중심으로 공동대응할 수 있도록 업체 상호간 조율도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 네트워크업체들이 자사에 없는 모델은 외산제품으로 끼워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국내업체간 상호구매를 통해 외산장비에 공동대응할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다.
또 정부의 기술개발과제 중 네트워크장비 개발에 대한 항목을 분리해 별도 지원하는 방안도 뒤따라야 할 부문이다. 현재 정보화촉진기금 지원분야 분류체계는 초고속 정보통신용 기술개발, 무선통신 기술개발, 소프트웨어 및 DB기술개발 등으로 분산되어 있는 체계를 한데 묶어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국산 네트워크 장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 항목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네트워크 국산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다.
콤텍시스템의 남석우 사장은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국산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며 『국내 네트워크업체들의 제품이 비슷한 상황에서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전략분야만 집중적으로 개발함으로써 특정부문에서 「세계 1등」이 되는 것만이 국내 네트워크업체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경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