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문제 연중 기획 16] CEO가 나서야 한다

『인류역사상 Y2k문제처럼 많은 소송을 촉발하고 기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기술적인 문제는 결코 없을 것이다.』

컴퓨터의 연도표기를 2자리에서 4자리로 변환시키는 단순작업으로 여겼던 밀레니엄버그의 심각성이 점점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대응차원을 국가적 수준 내지 기업 최고경영자 수준으로 하루빨리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관계기관과 업계 안팎에서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다.

『Y2k문제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대부분의 정보시스템이 수만개의 프로그램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업무시스템과 네트워크, 칩 속에 감춰진 공장자동화기기나 수치제어장치 등 미처 생각치 못했던 곳곳에 지뢰처럼 묻혀 완전해결이라는 말을 불가능하게 한다』.

업계전문가들은 이에따라 책임소재를 가리는 국가차원 내지 기업차원의 국제간 소송사건이 난무할 것이고 이로 인해 쓰러지는 기업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들은 2000년 이후 Y2k문제로 인한 소송시장만도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트너그룹이 미공개 내부지침을 통해 『한국은 이미 Y2k문제 해결시한이 지났으니 한국시장 수주시 이를 고려하라』고 IT업체들에 전달한데 이어 앤더슨컨설팅사도 최근 한국법인에 『한국에서 밀레니엄버그는 비즈니스의 기회라기보다는 위험』이라며 한국시장에서 Y2k문제 수주시 절대로 2000년 이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보장을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이같은 해외업체들의 잇따른 적색경보는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우리 기업들의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실제로 CIO를 주축으로 한 Y2k문제 대응으로는 더이상 기업사활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어 주목된다.

<사례 1>올초 국내 통신업체 D사의 M&A를 위해 방문한 해외 IT업체 관계자가 인수협상시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Y2k문제의 해결 여부였다. 그는 현재 운영중인 시스템의 밀레니엄버그를 해결하지 않았을 경우 현재 협상가격의 30% 이상을 깎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재의 운영시스템을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과 이로 인해 만약 조기 발생할 수 있는 사태에 따른 위험감수(리스크)비용을 포함해 헐값으로 인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협상에 나선 D사의 CEO는 배석한 CIO를 쳐다보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했다는 후문.

<사례 2>국내 유수의 한 제조업체가 자사 주력공장 자동화라인의 Y2k문제 현황파악을 위해 한 컨설팅업체에 실사조사를 의뢰했다. 조사결과 자동화라인에 연결된 모든 자동화기기의 Y2k문제를 일일이 해결하는 것보다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싸다는 계산이 나와 경영층을 놀라게 했다. 당초 단순한 변환작업을 생각했던 경영층은 각종 자동화기기의 현황을 파악하고 제작업체에 연락해 우선 계산장치에 내장된 마이크로코드의 Y2k 대응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응용소프트웨어 및 기기 검증, 연결, 종합테스트를 거치는 작업 프로세스를 보고 컨설팅결과를 조금은 이해했다는 후문.

<사례 3>얼마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전 산업업종의 3천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Y2k문제 해결 실태조사에서도 빠른 인식확산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이 지연되는 이유로 가장 많은 수가 응답한 대목이 「경영층의 인식부족」이었다. 또 이 조사에 따르면 Y2k문제 해결을 위해 연내 조사업체의 98%가 전담팀을 구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이를 위한 예산반영비율은 3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식확산과는 별도로 정작 경영층의 실천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 좋은 예다.

<사례 4>현재 업체나 관계기관들의 Y2k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인력은 전산실무자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Y2k문제 해결에 깊숙이 개입하기를 꺼린다.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대가가 커 문책감」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따라서 빛이 안나는 Y2k문제보다는 신기술개발 등 다른 팀에 남기를 원한다. 아직도 Y2k문제 해결을 비용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영층이 존속하는 한 밀레니엄버그 해결은 요원하다는 게 전산실무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물론 CIO가 총괄했기 때문에 대응이 미진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Y2k문제의 성격이 기술적인 문제의 차원을 넘어 각 기업의 생사가 걸린 비즈니스의 차원으로 빠르고 확대되고 있다는데 있다. 분명한 것은 Y2k문제를 해결한 업체와 해결하지 못한 업체의 우열차이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폭을 훨씬 넘어선 수준이 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은 기업이나 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CEO의 몫이라는 점이다』. 해외컨설팅업체 한 전문가의 이 말은 2000년을 이제 불과 1년 4개월 정도 앞둔 우리 기업과 관계기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