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은 조용했다.
이미 자정이 한참 넘어서 있었고, 다른 직원들은 퇴근한 지 한참이 지난 후였다. 김창규 박사. 벌써 3일째 이 연구소에서 밤샘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3일 동안 너무나 놀라운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창연오피스텔에서 카피해온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는 지금 느끼는 놀라움은 가장 강한 것이었다.
단순하게 통화 장애만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전체의 일반전화와 이동전화, 위성통신망의 모든 데이터를 통합하여 관리하기 위해 1백여개로 나뉘어 있던 것을 하나로 통합한 고객통합시스템의 전화요금과, 시설관리, 전화번호 데이터까지 다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 데이터이다.
김창규 박사는 시스템 보호와 가입자 보호를 위해 절대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NTC의 가입자관련 프로그램 데이터를 그 친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여겨졌다. 또한 이 정도의 프로그램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통신망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정보통신 분야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유선이면 유선, 이동통신이면 이동통신, 위성이면 위성 등으로 세분되어 있고, 전화요금과 시설, 호처리 등 각 분야별로 아주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창규 박사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일, 만일 이 친구가 우리나라 통신망에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행위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정도의 능력이라면 우리나라의 통신망에 대한 접근도 어렵지 않을 것이고, 이번 사고보다도 더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발생한 사고가 일반전화와 위성통신, 자동절체시스템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발생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좀더 종합적인 통신망 장애를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김창규 박사는 어쩌면 이번 사고가 이 정도에서 마무리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발생한 고장이 자동 회복되도록 해 놓았다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 원인은 찾았지만, 정말로 우리나라의 통신망을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이며,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것을 부술 수 있지만 일부만 부숴놓았고,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회복되도록 작업을 해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