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永昇 나눔기술 사장
「소프트웨어산업이 위기다」는 이야기는 이미 놀랄 만한 내용이 아니다. 두달 전 국내 소프트웨어 대표회사인 한글과컴퓨터가 한글을 포기할 뻔한 사건도 있었고 최근에는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업체들이 모여 「국산 소프트웨어 살리기 운동을 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사이 소프트웨어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아만 가고 있다. 정품을 쓰자는 주장에서부터 국산 소프트웨어를 우선 구입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대한 반응은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구매방식의 문제를 보자. 정부기관이나 기업이 주로 애용하고 있는 방식은 건설공사 입찰과 마찬가지인 저가입찰 방식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업계 입장에서 볼 때 저가입찰 방식만큼 개발의지를 꺾는 일이 없다. 기술이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가격과는 경쟁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격경쟁도 중요한 경쟁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격경쟁을 뛰어넘는 덤핑입찰은 결국 제살을 깎아먹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저가입찰 관행을 없앨 수 있겠는가. 저가입찰을 없애려면 먼저 구매 책임자가 제품 선정에 대한 분명하고 공정한 기준과 분별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각종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경쟁업체 역시 그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분명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는 개별 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인 개혁과정에서 이루어질 문제다. 아마 저가입찰 관행이 없어지는 때가 진정 대통령이 말하는 지식기반의 사회가 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그때까지는 소프트웨어업체들끼리 건설회사처럼 담합을 하거나 아니면 배고픔을 참는 수밖에 없다.
정부의 산업지원정책도 마찬가지다. 정치논리와 경제논리가 항상 충돌하는 것이 우리 산업의 현주소다. 많은 기업을 지원해야 그만큼 성공한 기업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확률론에 입각한 착각과, 많은 기업을 지원해야 생색이 나는 정치현실 때문에 제한된 정책자금을 많은 기업에 무조건 균등하게 쪼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투자집중력이 떨어져 목적했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식의 자금지원이 필요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현재 소프트웨어산업은 중소업체들끼리라도 서로 힘을 모을 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더 이상 시장성이 없어 보이는 비슷한 일을 비슷한 회사들끼리 중복해서 하고 있고 창의적인 일보다는 당장 생존을 위한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역할분담도 허울 좋은 말뿐이다. 서로 살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뒤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이 해야 할 일을 중소기업이 허덕이며 하고 있고, 중소기업이 해도 좋을 일을 대기업들이 기를 쓰고 하고 있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서로 소모적인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해외로 나가면 될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그런 노력을 하는 회사도 많다. 그러나 그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명확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외국에서 개발해보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이나 경쟁력 없는 제품을 가지고 우리나라처럼 과장과 포장만 잘하면 팔 수 있다는 생각이 먹힐 만큼 만만한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에서 성공할 때까지 밀어줄 수 있으려면 당연히 국내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따라서 소프트웨어산업이야말로 전면적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는 경쟁논리는 한가로운 주장이다. 아직 다른 산업만큼 굳어져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물론 명쾌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전략적인 방법을 찾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총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전을 심어주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또 이름만 걸어놓는 협회 수준이나 몇몇 정치인이 중심이 된 단체가 아니라 실제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산업 전략단위가 구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가능한 업체간의 기술공유와 전략공유를 위한 여러 컨소시엄이 활발해져야 한다. 또 단기적인 목표에서 장기적인 비전까지 제시할 수 있는 컨소시엄의 활동이 필요하며 이를 중심으로 정부와 학교, 연구소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원활해질 수 있도록 하는 일상적인 정보유통시스템도 서둘러 만들 필요가 있다. 정확한 정보가 서로 공유될 때 힘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요즘처럼 주위에 「국민운동」이 많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금 모으기 운동」 「한글 살리기 운동」 심지어는 「태극기 달기 운동」 등 국가적 위기상황을 국민운동으로 돌파해 보자는 생각은 이해는 가지만 왠지 시대에 뒤떨어진 군국주의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보다 현명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소프트웨어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기술자들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고 새로운 힘과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는 젊은 후배들이 속속 업계에 진출하고 있다. 최근 석방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금처럼 앞이 안보일 때는 사람이 희망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