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크게 줄었습니다. 단품 판매는 물론 혼수품까지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 돌파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용산상가에서 가전매장을 운영하는 K씨의 하소연이다. 전국 최저 가격이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K씨의 매장을 찾는 손님은 20명 정도. 이 가운데 판매는 10건 남짓이다. IMF사태 이전 하루 40~50명이 매장을 방문하고 그 중에서 20~30건이 판매와 연결될 때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비교적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는 용산전자상가의 이같은 상황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지역장사를 하고 있는 일선 대리점들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한 매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IMF라는 국가적인 환경변화에 따라 시장이 줄어드는 데는 가전사들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
지난해말 IMF시대에 접어들 때만 해도 가전업체들은 97년 대비 30% 안팎의 시장위축을 예상했다. 올 들어서 1, Mbps 분기의 경우 각사별 매출 감소폭이 30% 미만으로 나타나 이같은 예측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2, Mbps분기 들어서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보통 1년을 놓고 볼 때 2, Mbps분기 매출이 가장 크다.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 제품은 물론 에어컨 등 계절상품 판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성수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 Mbps분기 매출이 어느 정도만 유지되면 IMF의 충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 Mbps분기 매출은 최악이다.
「순수 가전제품만 놓고 볼 때 전년대비 40%가 넘는 매출 감소」. LG전자와 삼성전자의 2, Mbps분기 경영 성적표다. 월드컵 특수를 통해 일부 수요를 끌어들인 TV를 제외하고 냉장고, 세탁기, VCR 등 주요 가전제품이 극심한 판매부진을 겪었다. 냉장고와 세탁기의 경우는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의 50%도 안될 지경이다.
가전업체의 2, Mbps분기 매출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제품은 여름 계절제품이다. 에어컨의 경우 LG전자와 삼성전자가 각각 30% 정도 생산을 줄였다. 올 연초까지만 해도 폭염이 몰려올 경우 제품 부족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됐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씨마저 가전업체들의 예상을 빗나갔다. 한달여 지속된 장마에다 게릴라식 폭우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들면서 전국이 물난리를 겪는 와중에 여름 가전제품 특수는 실종됐다.
가전업체들은 올하반기의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가전제품 판매를 촉진할 뚜렷한 호재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가전시장 위축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일선 가전유통점들이다. 하반기의 부정적인 시장전망은 대리점들의 자금압박을 가중시켜 적지않은 부실 대리점을 양산할 게 뻔하고 문을 닫는 대리점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