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당초 자동차 분야를 비롯해 유화나 정보통신, 반도체 등을 대상으로 추진하겠다던 빅딜의 대상에 최근 박막표시장치 액정표시장치(TFT LCD)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련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 주요 산업 가운데 중복 또는 과잉투자된 부분이 없지 않아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빅딜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국내 산업 판도가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는 빅딜은 신중히 실시해야 하겠다. 특히 이번 빅딜 대상이 한결같이 첨단 산업 분야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정부가 최근 TFT LCD 사업을 빅딜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우선 이 사업이 대규모 투자를 요하는 장치산업인데다 최근 세계적으로 TFT LCD 제품이 공급과잉 현상을 빚고 있어 우리나라가 중복이나 과잉투자를 한 것 아니냐 하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그동안 국내 TFT LCD 업체들은 제품가격 하락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으며 적지 않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일본 업체들도 지난해부터 이 사업에서 더러 손을 떼기도 해 LCD 사업전망은 극히 불투명해 보이기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 삼성, LG, 현대 3대 그룹이 모두 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서 다른 품목과 교환을 쉽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점이 감안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TFT LCD 사업을 빅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이 사업이 결코 중복투자나 과잉투자가 아니라는 점이 그 첫번째 이유다. 국내에서 TFT LCD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와 LG반도체, 현대전자 3개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마쓰시타를 비롯한 히타치, 후지쯔, 산요, NEC, 카시오 등이, 대만의 경우 에이서, 기미실업, 중화영관, 원태과기공업, 연우광전, 동원광전 등이 각각 이 분야에 진출해 있어 업체수나 투자내용에 있어선 경쟁국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뿐만 아니라 후지쯔, 산요, 에이서, 기미실업, 중화영관 등 외국 업체들은 오히려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현 상황을 과잉투자라고 보고 있다면 설비를 늘릴리는 없을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중복, 과잉투자의 결과물로 거론되던 TFT LCD의 공급과잉 상태가 점차 해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과 LG, 현대 3사의 지난 2, Mbps분기 TFT LCD 수출실적이 5억8천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가 늘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밖에 앞으로의 시장전망도 밝은 편이다. 후지카메라종합연구소 등 관계기관은 올해 TFT LCD 의 세계 시장규모가 지난해보다 16.6% 성장하고 내년 이후 2000년대 초까지는 매년 20% 이상 고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트북PC 수요가 앞으로 계속 크게 증가할 전망인데다 TFT LCD의 용도 역시 관련기술의 개발로 크게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TFT LCD는 반도체와 함께 2000년대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해 나갈 유망한 첨단산업으로 중점 육성해야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이 사업을 경시해선 안되는 것은 이 사업이 갖는 기술성이나 전후방 효과 등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다. TFT LCD는 완제품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부품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캠코더 제품의 경쟁력이 일본보다 약한 것은 고체촬상소자(CCD)와 함께 TFT LCD 기술수준이 뒤지기 때문이다.
현재 TFT LCD 시장은 초기로서 벌써부터 중복이나 과잉투자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비롯된 가격하락은 반도체의 경우처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최근 들어선 가격이 오름세를 타고 있다.
이같은 점에도 불구하고 TFT LCD 사업에 빅딜을 실시, 사업을 통합할 경우 생산이나 마케팅 측면에서 그전보다 향상되는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국내의 LCD업체 수를 단순히 줄이고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 외에는 낳을 게 없다는 산업계의 주장에 귀를 귀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제 정작 해야 할 일은 TFT LCD산업을 육성시키는 일이다. 지난 95년 세계적으로 TFT LCD 공급과잉이 빚어졌을 때 일본은 우리와 달리 대대적으로 투자를 단행함으로써 오늘날 세계 제1의 TFT LCD 생산국이 될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따라서 TFT LCD 분야는 기업체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과 여건조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