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쿠넹 감독의 데뷔작 「도베르만」은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숨가쁘게 흘러가는 82분짜리 장편 CF를 보는 듯하다. 이 CF가 팔려고 내놓은 상품은 극단적인 인간의 본성을 경험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다. 이러한 무례함이 바로 이 영화를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가장 천박하게 만드는 요소다.
「도베르만」에는 프랑스영화의 전통과 미덕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대신 폭력의 유희가 어떠한 제재나 간섭도 없이 난무한다. 악의 에너지가 넘치는 영상은 관객들에게 판단이나 가치에 대한 혼란을 느낄 틈조차 주지 않으며 몰아붙인다. CF감독이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장 쿠넹은 이 영화에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영화적 입장은 철저히 배제시킨 채 빠른 편집과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감각을 극단적으로 밀고 간다. 이러한 도발성은 MTV세대에겐 매력적인 반란처럼 느껴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치기어린 유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제목 「도베르만」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독일산 개 이름. 이 영화의 주인공인 얀의 별명이기도 하다. 유아 세례를 받는 성단 안에서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총을 선물받았던 얀.
그는 가장 악명높은 갱으로 성장한다. 얀(뱅상 카셀 분)은 벙어리 애인인 나트(모니카 벨루치 분)와 함께 현금수송차를 박살내고 돈을 갈취한다. 그의 다음 목표는 은행을 터는 것. 얀은 이 계획을 위해 동료들을 모은다. 날아가는 테니스 공을 맞출 정도의 명사수 「모기」, 도끼전문가 「불독」, 수류탄전문가 「신부」가 핵심 멤버. 경찰은 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지만 얀 일당의 폭력 앞에 번번이 무릎을 꿇고 만다.
은행을 터는 순간에도 얀과 나트는 한가롭게 폐쇄회로 카메라 앞에서 사랑을 나누며 경찰을 비웃고, 그들을 습격하는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박살이 난다. 때마침 지나친 고문수사로 인해 정직 상태에 있던 형사 크리스티니(체키 카리오 분)는 복직을 위해 얀 일행을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동성연애자이자 얀의 일당 중 한명인 소냐의 집을 들이닥쳐 그들의 집합장소를 알아낸다. 이 장면에서 크리스티니가 소냐의 아기를 집어던지고 가족들을 향해 보여주는 언행은 형사라기보다 「미친 개」에 가까운 광기다.
마침내 얀 일행의 집결지인 록카페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총격장면은 말 그대로 난동과 광란의 아수라장이다. 더 이상 갱과 경찰을 구분하는 선의 논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관객은 단지 이들이 보여주는 잔인함의 만찬을 지켜볼 뿐이다.
마치 오락게임을 즐기듯 그 만찬을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온데간데 없는 영화의 철학에 비난을 퍼부을 것인가는 관객의 취향이다.
<엄용주,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