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란 80년대 초만 해도 학문적 담론 속에나 존재했다. 이 말이 마셜 맥루한이나 앨빈 토플러의 책에서 벗어나 보통사람들의 화두로 등장한 것은 PC가 대중화된 80년대 후반 무렵. 인터넷으로 그물망 네트워크가 엮이고 지구촌 네티즌이 1억명을 넘어선 오늘날 정보사회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용어가 됐다.
이제 정보사회가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키워드」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자들은 21세기를 네트워크사회, 사이버 소사이어티, 초고속 통신망사회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말들도 따져 보면 모두 정보사회와 일란성 쌍생아들이다. 첨단기술, 특히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으로 정보가 소비재처럼 중요해진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한다.
결국 정보사회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보면 21세기의 밑그림이 보인다. 그리고 정보사회의 패러다임을 읽어낸다면 다가올 밀레니엄의 발전방향을 짚어볼 수 있다. 패러다임의 사전적 의미는 「기본형」 또는 「품사의 어형변화표」. 요즘엔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사회학적 용어로 쓰인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듯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넘어가면서 변화되는 기본 틀이 바로 패러다임이다.
그렇다면 두 사회가 가장 뚜렷하게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산업사회는 인류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왔다. 공장은 소비재를 대량 생산했고, 증기기관차는 그 생산물을 값싸게 실어날랐다.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한 셈이다. 이러한 대량생산의 수레바퀴 아래서 사람들의 삶은 점차 표준화, 규격화되어 갔다. 찰리 채플린 주연의 「모던 타임즈」에서 물밀처럼 모여들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노동자들이 그러한 패러다임을 상징한다. 「나인 투 파이브」의 근무형태는 마치 같은 모양, 같은 브랜드, 같은 가격표가 찍혀 진열대로 올라가는 상품들을 닮았다.
정보사회가 도래한 오늘날을 18세기 산업혁명기와 비교한다면 대량생산 공장은 컴퓨터, 증기기관차는 네트워크다. 컴퓨터와 통신의 발달은 산업사회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물질 재화의 생산시스템에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해내고 있다.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수고를 덜어주는 셈이다. 순식간에 정보를 찾아주는 DB나 빛의 속도로 정보를 나르는 광통신이 좋은 예다.
조지 오웰 소설 속의 「빅 브라더」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소수 비관론자들의 말을 무시한다면 21세기의 시대정신은 다양성, 자율성, 창조성이다. 플렉서블 타임제 도입으로 출근부는 없어지고, 직장인들은 차츰 재택근무를 선호하게 된다. 미래 사이버 소사이어티 주민들의 특징은 백인백색이라는 것. 학자들은 이들이 공동체를 거부하는 탈집단화 증세와 함께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가상공간에서 쉽게 묶였다 흩어지는 성향을 띨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통형태는 농업사회 하의 주문생산제처럼 소량생산 내지 개별주문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저널리즘의 미래는 어떨까. 방송과 신문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모든 매체는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에서 「내로캐스팅(Narrowcasting)」으로, 「일방향」에서 「양방향」으로, 그리고 「규격품」에서 「맞춤형 제품」으로 바뀌어갈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매스미디어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이러한 시대정신을 잘 구현한 매체만이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독자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선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