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M&A 사례집" 펴낸 갈정웅 대림정보통신 사장

90년대 중반 정보통신업계의 가장 큰 변화는 기업인수 또는 합병과 같은 M&A일 것이다.

한솔그룹이 그동안 제지사업을 주력으로 했던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하루 아침에 국내 정보통신 사업분야에서 「다크호스」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PCS 사업자 선정과 함께 「옥소리」 등 유망 중소기업을 성공적으로 M&A했기 때문이다. 또 삼성, 현대, LG 등도 각각 90년대 중반부터 반도체 특수로 벌어들인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AST, 맥스터, 제니스 등 세계적인 전자, 정보통신기업을 잇따라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2∼3년 동안 국내 경제사정은 급반전돼 급기야 지난해 말 IMF로부터 긴급 자금지원을 받아 겨우 하루하루 연명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해외시장에서 투자자금 유치에 나서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당한 원매자만 있으면 회사를 아예 팔겠다고 내놓는 매물이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경제파탄을 M&A의 관점에서 분석한 「M&A 사례집」(창해출판사)이 최근 발간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삼성전자가 지난 93년 잇따라 사들인 일본 하이파이 오디오 전문회사인 럭스와 미국 화합물 반도체 회사인 HMS, 현대전자가 같은해 사들인 미국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전문업체인 맥스터, 또 LG전자가 지난 95년 사들인 미국 TV회사인 제니스 등 국내 전자, 정보통신업체들의 M&A 사례를 그 동기에서부터 전략적 적합성, 인수과정, 최종 평가 등의 항목에 걸쳐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갈정웅 대림정보통신 사장(53)은 이러한 사례분석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결정할 때 「경쟁회사에 질 수 없다」며 「밀어붙이기」를 일삼은 데다가 그 후 해외기업 경영에도 현지 사정에 맞지 않는 한국식 경영을 고집, 그동안 엄청난 손해를 봤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동안 대기업들의 해외기업 인수 및 경영방식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가령 삼성, 현대, LG가 지난 93년부터 해외에 투자했거나 오는 2000년까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자금규모는 각각 수십억달러에 달하는데, 이를 합치면 현재 국내 증시에 상장된 5백여개 회사의 주식을 모두 살 수 있는 금액이라는 설명이다.

M&A에 있어서는 한두번의 판단착오도 회사경영에 치명적인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삼성은 해외 인수기업을 경영할 때 한국식을 고집, 더욱 많은 손해를 본 반면, 현대는 현지 경영자에게 비교적 많은 권한을 준 결과 전체적으로 해외투자에서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그 규모가 비교적 적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해외기업 M&A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갈 사장은 이에 대해 최근 삐삐와 휴대폰 단말기를 생산하는 유망 벤처기업인 팬택이 미 모토롤러사로부터 1천5백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한 사실을 예로 들며,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기술만 보유하고 있으면 누구나 해외에서 쉽게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제 중소기업 창업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세계시장을 겨냥해 특화된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1945년생인 갈 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외환은행 등을 거쳐 지난 77년 대림산업에 입사, 그동안 대림그룹 기획조정실 상무, 서울증권 상무로 근무했으며 지금은 대림정보통신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또 이들 기업을 경영하면서 쌓은 금융 및 실물경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 출간한 M&A 사례집 외에도 그동안 「기업도 상품이다」(91년), 「중소기업의 M&A 전략」(97년) 등 전략경영과 관련된 책을 다수 저술하기도 했다.

<서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