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 업체들이 최근 16MB, 32MB급 대용량 비디오 메모리를 장착한 액셀러레이티드 그래픽 포트(AGP) 그래픽카드를 잇따라 내놓음으로써 인텔이 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정한 AGP 규약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그래픽카드 시장을 급속히 잠식한 인텔과 기존 그래픽카드 업체들간 치열한 시장경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향후 이 시장판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래픽카드 업체들은 최근 AGP 규약에서 정한 비디오 메모리 용량을 훨씬 뛰어넘어 16MB, 32MB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당초 인텔은 AGP 인터페이스가 5백MB의 데이터 전송속도를 갖춰 주기판 내 주메모리를 비디오 메모리로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AGP 규약을 제정하고 그래픽카드 업체들이 참여토록 했다.
따라서 AGP방식은 1백33MB의 데이터 전송속도를 갖는 PCI 그래픽카드보다 4배 가까운 데이터 전송속도를 갖춰 4MB의 비디오 메모리만으로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인텔의 기대와는 달리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이 메모리 증설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형 그래픽카드 업체인 ATI사는 최근 PC에 장착하고 있는 주메모리와 같은 수준인 32MB의 AGP 그래픽카드 「래지 퓨리」를 출시하고 AGP 그래픽카드의 고성능화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크리에이티브사도 비디오 메모리 16MB의 「그래픽 블라스터 리바 TNT」를 출시하면서 메모리 용량 확대에 가세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 업체인 가산전자·제이씨현시스템·택산전자 등 그래픽카드 전문업체들이 비디오 메모리 8MB급 제품을 내놓았으나, 앞으로 16MB급 고성능 AGP 그래픽카드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올해 말께면 16MB 이상급 제품이 주력 모델로 등장할 전망이다.
이처럼 그래픽카드 업계가 AGP 그래픽카드의 비디오 메모리를 대폭 확대시키고 있는 것은 그래픽카드 판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임과 응용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3D 가속에 필요한 데이터량이 매년 2배 이상씩 증가하는 등 기존 4MB, 8MB 제품으로는 소프트웨어의 속도처리를 원활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비디오 메모리의 가격이 하락해 제조원가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이같은 추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 대만의 메모리 제조사들이 저가공세를 펼침에 따라 메모리가격이 꾸준히 내려가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은 주기판 메모리를 끌어다 쓴다는 AGP 규약을 따르지 않고 그래픽카드 자체에 메모리를 다량 장착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시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의 마케팅적 요인도 AGP의 고성능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컴퓨터 사용자 대부분이 대용량 비디오 메모리를 장착한 제품을 선호하는 데다, 그래픽카드들이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갖춰 자사 제품을 특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그래픽카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기판 메모리를 공유해 사용하는 개념보다 카드 자체에 메모리를 다량 장착하는 방식이 성능이 우수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중급 AGP 그래픽카드 제품은 16MB 이상의 비디오 메모리를 장착하는 추세가 일반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