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은 최근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96년부터 서비스를 제공해왔던 여의도 멀티미디어 시범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국회와 방송3사, 30여개 대형빌딩, 3백여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원격교육, 영상전화, 전자도서관 등 초고속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해온 것. 한국통신은 이를 위해 95년 10월부터 1백50억원을 투입해 가입자 광케이블망과 비동기전송모드(ATM) 교환기, 멀티미디어 단말기 등을 설치한 바 있다.
한국통신이 이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서비스를 상용화하더라도 고속서비스를 충족할 만한 콘텐츠가 미비해 시장형성에 실패할 공산이 크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케이블모뎀,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종합정보통신망(ISDN) 등 다양한 서비스가 고속 인터넷시대 개막을 예고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집에서 통신을 하다가 이미지가 잘 전송되지 않으면 짜증이 나기는 하죠. 하지만 당장 T1(1.544Mbps)이나 E1(2.048Mbps)급의 고속서비스가 실시된다고 해도 이를 이용해 볼 만한 콘텐츠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고작해야 보지 못한 TV프로그램을 전송받거나 큰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는 것 정도죠.』
한 PC통신 이용자의 말이다.
다른 전문가들도 콘텐츠 부족을 고속 인터넷 서비스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일반 모뎀이 아닌 경로를 이용해 PC통신에 접속하는 비율은 미미한 실정이다.
고속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콘텐츠가 생겨나지 않는 까닭은 콘텐츠의 특성상 단시간에 좋은 정보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콘텐츠사업자들이 고속 인터넷 시장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데 있다.
『ISDN의 경우 장비가격이 일반 모뎀보다 비싸고 설치도 어렵습니다. 특히 요금이 종량제이기 때문에 비용부담도 높은 편이죠. 케이블모뎀 서비스는 서비스 지역이 아직 제한돼 있는데다 안정화도 돼 있지 않습니다. ADSL도 내년 중에 상용화를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요금이나 서비스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서 있지 않은 상태죠. 고속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그만큼 콘텐츠 구축비용과 시간도 늘어나는데 과연 이용자가 많은 정보이용료를 내려고 할지도 의문입니다.』
한 콘텐츠사업자는 언젠가는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받게 될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조만간 올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가장 핵심이 되는 인터넷 백본 확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무리 가입자측 인터넷 회선이 빨라지더라도 인터넷 국제회선이나 국내 백본이 늘어나지 않으면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1백28Kbps의 ISDN서비스나 최저 2백56Kbps를 보장하는 케이블모뎀 서비스 정도는 소화할 수 있겠지만 2Mbps에서 8Mbps의 속도를 지원하는 ADSL이 보급되려면 지금과 같은 백본이나 국제망으로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고속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설치하는 장비 가격도 아직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현재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20만∼40만원의 추가 지출을 해야 한다.
설치도 일반 모뎀과는 달리 매우 복잡하다. 케이블모뎀은 케이블TV망 설치 지역에 있어야 하고 ADSL서비스는 전화국과 3㎞ 이내에 있어야만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이처럼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고속 인터넷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불평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 하반기 정도는 돼야 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장윤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