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실적이 나쁜 정보기술(IT) 업체의 최고경영자들이 줄줄이 불명예 퇴진을 당하고 있다.
매출이 부진하거나 적자를 면치 못한 기업 간부는 이의 대가로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는 미국식 책임경영의 원칙이 냉엄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 대표가 설사 창업주라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다.
사업다각화 전략을 지휘하기 위해 2년 전 사장겸 최고관리책임자(COO)로 영입됐던 VLSI 테크놀로지의 리처드 베이어는 계속되는 수익감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달 초 사임했으며 네트워크업체인 어댑텍의 그랜드 세이비어스 사장겸 최고경영자(CEO)도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결국 물러났다.
또한 세계 최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업체인 시게이트 테크놀로지의 창업자이자 이 분야 개척자로 인정받아 왔던 앨런 슈거트 회장의 퇴진 역시 경영부진에 대한 이사회의 압력에 따른 것이다.
특히 반도체 시장의 장기침체로 매출과 수익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반도체업계의 간부들은 그야말로 곤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만큼 투자자들이나 이사회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달라진 시장환경도 경영자들의 물갈이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 IT산업의 본격적인 성장기였던 5∼10년 전만 하더라도 경영자들은 매출확대를 통해 외형적인 규모를 늘리는 것이 경영능력의 최우선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성숙기와 함께 기업 성장세도 둔화되면서 기업들은 새로운 경영스타일을 원하게 됐다.
즉, 연평균 40%의 외형적 성장세보다 이제는 기업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심각해진 시장경쟁 속에서 새롭게 요구받는 경영덕목이 된 것이다.
어댑텍의 경우도 비용과 관련한 세이비어스 사장과 이사회간의 좁혀지지 않은 의견차가 결국 CEO퇴진으로까지 발전했다는 후문이다.
세이비어스 사장은 다양한 신제품 개발을 위해 R&D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추진한 반면 비용절감을 원했던 이사회는 R&D투자 축소쪽으로 기울었던 것.
실적이 부진한 경영자들에게는 이래저래 수난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
<구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