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케트전기 "상표권 질레트 임대" 파장

 국내 최대 건전지업체인 로케트전기가 세계적 편의품 공급업체인 질레트에 국내 전지 판권 및 상표 사용권을 앞으로 7년간 임대해 주는 조건으로 약 6천만달러(한화기준 8백15억원)의 외화를 유치키로 함에 따라 로케트전기의 향후 진로와 국내 전지업계에 미칠 파장에 대해 관련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지난 50년간 전지만을 전문 생산, 이 분야 최대 기업으로 성장해온 로케트전기가 질레트와 손잡음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와 함께 국내 건전지시장이 외국업체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로케트전기는 이번에 6천만달러를 수혈받게 됨으로써 고금리에 시달려온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로케트전기는 매년 매출액이 20% 이상 늘어나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권 차입 등으로 인한 금리부담금이 연간 1백60억원에 달해 사업에서 남는 이윤을 이자로 지불하기도 벅찬 수준이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전지 생산에 필요한 국제 원부자재가격이 45% 이상 올라 전지 가격 경쟁력은 떨어진 반면 외국 건전지업체들은 내수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출혈에 가까운 가격 공세를 전개해 채산성 악화 압박을 받아왔다.

 여기에 PCS 등 휴대형 전화기 보급 증가로 지난해까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던 페이저의 보급 추세가 둔화되기 시작, 건전지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같은 내우외환에 시달려온 로케트전기는 상표권 및 내수 판권 임대라는 파격적인 방안으로 난국을 타개키로 하고 미국 질레트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게 됐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정현채 로케트전기 사장은 『6천만달러 상당의 달러가 유입됨으로써 회사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됐고 그 여력을 바탕으로 리튬이온전지 등 차세대 제품 개발에 전력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로케트전기는 그동안 차세대 전지로 부상하고 있는 리튬이온전지 개발 및 연구설비 구축에 약 1천억원 가량을 투입했으나 양산설비 도입에 따른 추가 재원 염출에 한계를 느껴 본격 생산을 장기 과제로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게 됨에 따라 로케트전기는 제2의 도약 청사진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이와 더불어 로케트전기는 질레트를 통해 남아프리카·유럽 등지에 전지 생산설비 및 전지를 수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게 됐다는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로케트전기 자체로는 이번 전략적 제휴가 변신의 모멘텀을 제공했을 지 모르지만 국내 건전지 시장에는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왜냐하면 질레트 밑에는 세계 건전지시장을 거의 석권하고 있는 듀라셀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듀라셀은 이미 로케트전기와 국내 건전지시장을 양분해온 (주)서통의 상표와 국내 판권을 임차해 놓고 있으며 이번에 로케트전기의 판권과 브랜드까지 거머쥐게 됨에 따라 사실상 국내 최대 건전지 공급업체로 급부상하게 됐다. (주)영풍이 건전지를 생산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국내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미미하기 때문에 앞으로 국내 건전지시장은 듀라셀과 에버드리(일명 에너자이저) 등 2개 외국 건전지업체에 의해 주도될 공산이 커졌다.

 특히 면도기·만년필·칫솔·문구 등 편의품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질레트가 세계적인 다국적 유통업체들과 손잡고 국내 건전지시장을 공략할 경우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