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위성 발사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북한의 전자·정보화 실태는 어느 정도일까.
북한의 전자·정보화 기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주 낙후된」 상태이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말해주듯이 전자·정보산업도 이와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일찍이 정보화에 눈은 떴지만 이를 발전시켜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북한은 뒤늦게 정보화의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국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폐쇄적인 정치·경제 상황이 더이상 국제교류나 협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김정일은 지난 96년 국가과학원을 방문해 연설하는 가운데 해외 컴퓨터 기술 도입을 강조했다. 또 자연과학과 공업분야 학술용어를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로 변경토록 지시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국가과학원 사전 편찬위원회」는 96년 6월 「장치 기술」과 「프로그람 기술」로 부르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원어 그대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기록하는 등 「정보화의 세계화」에 뒤늦게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북한의 정보화는 낙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태동됐다. 64년 1월에 채택된 내각명령 1호 「자립적인 반도체공업을 창설한데 대하여」란 기치 아래 당시 세계적으로 불과 몇개의 나라에서밖에 조립하지 못했던 상사형 만능전자계산기 「9.11」을 4개월만에 개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또 69년에는 디지털 컴퓨터인 수자형 만능전자계산기 「전진-5500」을 개발했다. 이 컴퓨터는 주기억 용량이 4천96비트이며 여기에 들어간 트랜지스터만 1만8천개, 저항·축전기류는 6천여개, 자기코어 기억소자는 9만여개에 달했다. 북한의 유선방송체계와 텔레비전 방송도 이 때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95년에는 집적회로 반도체소자공업, 전자계산기공업, 프로그램산업, 공작기계공업과 신소재, 각종 전자요소부품의 개발 생산에 들어갔다고 96년 「조선중앙년감」에서는 밝히고 있다. 특히 「평양프로그람쎈터(PIC)」는 2차원 설계 프로그램과 3차원 설계 프로그램을 개발해 백두산 건축 연구원에 적용하기도 했다. 2차원을 「들」, 3차원을 「산악」이라고 부른 이 설계 프로그램은 9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컴덱스-아시아」에 전시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에 판매하지 않았다.